지난 7일 여의도에서 진행된 '윤석열 탄핵 집회' 취재현장에서 들은 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회 앞은 집회의 장소가 됐다. 아니 풍경만 놓고 보면, 축제의 현장이었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응원봉을 들고 와 흔드는 것도 모자라 윤석열 정부와 국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K팝 음악을 함께 불렀다. 식당과 카페는 현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응원의 마음을 선불결제 방식으로 대신 전하며 집회 현장에 힘을 보탰다.
달라진 집회문화는 '기레기'로 인식되던 기자를 향한 대중의 시선도 바꿔놨다. 달라진 그 시선을 단박에 느끼게 한 게 앞서 시민이 기자에게 건넨 그 한 마디였다.
'기레기'.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시절 무리한 취재로 쓰레기와 기자를 합하며 만든 이 별명은 어느새 일반명사처럼 쓰이게 됐다. 기자보다는 기레기가 익숙한 세상이 됐다.
하지만 지난 주말 여의도에 기레기는 없었다. 12· 3사태로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 현장에는 기자와 취재원만 있었다.
추운 날씨에 손이 얼고 콧물이 흐르는 상황에도 사람들은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았다. 빠르게 이동하다가도 인사를 건네며 인터뷰를 요청하면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전엔 길거리 인터뷰라도 하려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쌩하니 지나가던 때는 느끼지 못한 경험이었다.
응원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오후 9시 30분경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인터뷰에 응한 한 행인은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도 인터뷰를 마무리한 후 기자를 향해 두손을 불끈 쥐어 올리며 "화이팅"이라고 속삭였다.
축제, 아니 집회의 현장에서 취재하며 기레기라 불리는 게 익숙하던 기자는 오랜만에 도파민이 솟았다.
기사를 쓸 장소가 없어 건물 1층 로비에 쭈그려 앉아 노트북을 펼쳤을 때도, 줄이 긴 화장실 가는 걸 포기했을 때도 효용감이 충만했다.
늦은 밤 대중교통이 어려운 여의도를 벗어나기 위해 서울자전거인 '따릉이'를 탔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마냥 신이 나 페달을 밟은 발은 가볍고 추운 겨울을 받아내는 얼굴과 손은 시리지 않았다.
집회는 축제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방국들은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우려하고 있다. 경제적 타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증시는 추락하고 환율은 고점을 향하면서 관계 부처와 기업들은 긴급회의를 열며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선 국회 앞과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또 다시 둘로 나뉠 거라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따릉이' 페달을 밟으며 집회 현장을 빠져나오던 그날 겨울의 찬 공기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던 그날, 대한민국도 다시 달리려면 바퀴들이 함께 굴렀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는 바퀴 하나만 굴러서는 갈 수 없고 페달을 멈추는 순간 넘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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