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경기 침체에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4대그룹의 인사를 관통하는 단어는 축소(Slim)·스마트(Smart)·안정(Safety) 등 '3S'였다. 인사를 통해 신규 임원수를 줄여 조직을 슬림화했고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업 스마트화를 핵심 과제로 잡았다. 임원 유임 등을 통해 안정화에도 힘썼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9일 "경기부진으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조이는 상황이라 임원 수를 줄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기업 조직개편은 '재계 화두'이자 '숙제'인 AI의 근원적 경쟁력을 확보해 관련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자리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줄어든 임원수는 현재 재계와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SK그룹은 2025년 신규 임원으로 75명을 배출했다. 지난해 발표한 올해 임원은 두 배 수준에 가까운 145명이었다. 2022년엔 임원수가 164명이었다.
지난달 21일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도 전체 승진 규모가 지난해 대비 18명 줄어든 121명이었다.
삼성전자 역시 신규 선임 임원은 137명으로, 지난해 143명보다 6명 감소했다. 2017년 96명 임명하고 7년만의 최소 규모다.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 대신 유임을 통해 안정을 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LG는 LG유플러스 대표에 홍범식 사장을 선임한 것 외에는 나머지 계열사 사장들과 부회장 라인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삼성전자도 쇄신은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현호 부회장을 비롯한 핵심 수뇌부는 물론 임원까지 대부분 제자리를 지켰다.
현대자동차 역시 대표이사인 장재훈 사장이 완성차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호세 무뇨스 글로벌최고운영책임자 겸 북미권역본부장이 현대차 첫 외국인 CEO에 이름을 올리면서 파격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주역이라는 점에서 실상은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은 신규 임원 평균 나이에서 안정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승진 임원의 평균 연령은 만 49.4세로 만 48.5세이던 직전 해보다 올라갔다.
다만 AI를 향한 의지는 확실히 드러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DS)부문 조직 내 흩어져 있던 AI 관련 부서를 하나로 모아 ‘AI센터’를 신설했다.
SK그룹도 조직 신설을 통해 AI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그룹 전반의 AI 역량 결집을 위해 AI 연구·개발(R&D)센터를 SK텔레콤 주도로 신설하고 SK하이닉스 등 계열사 간 시너지 강화에도 나선다. 또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AI혁신담당’ 조직도 신설해 신성장 사업 발굴에 나선다.
이러한 3S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들은 조직 유연화 등 현재와 같은 추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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