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현장] 법 보호에서 벗어난 간호사들...약 60%가 전공의 업무 강요받아

안서희 기자 2024-08-20 17:50:47
수련병원 간호사들, 강제적인 연차 사용 및 무급 휴가에 내몰리는 현실 불법 진료 신고센터 신고된 의료기관과 미참여 의료기관 매칭한 결과 88% 일치 간협 "간호사 1명에 환자 5명 배치"요구
(왼쪽)손혜숙 제1부회장과 (오른쪽)탁영란 대한간호협회장이 간호사 법적 위협 2차 기자간담회에 참여해 의견을 발표했다[사진=안서희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현장 간호사 10명 중 6명이 병원 측의 일방적인 강요로 전공의 업무를 대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동호로 간협 서울연수원에서 탁영란 간협 회장과 손혜숙 제1부회장이 참석한 ‘간호사 법적 위협 2차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2월 28일 진행된 1차 기자회견 이후 약 6개월 만에 열렸다.
 
탁 회장은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으로 인한 의료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과 업무 범위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말문을 열며, 지난 2월 개설된 ‘현장 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접수된 제보를 사례로 들었다.
 
제보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던 지난 2월 20일부터 3월 둘째 주까지 병원들은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 전담, 일반 간호사들에게 본인 업무 외의 다른 업무를 맡겨 과중한 업무를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3월 둘째 주 이후 환자들이 퇴원하며 병상 가동률이 급감하자 병원은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에게 강제 연차와 무급 휴가 심지어 실직이라는 고용 위협까지 가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4월부터 실시된 ‘의료 공백 위기 대응 간호사의 근무 환경 위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전국 2000여명의 간호사 중 67.9%가 수련병원 간호사들이었으며, 이들은 강제적인 연차 사용과 무급 휴가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현장 간호사 뿐만 아니라 진작 취업이 돼야 했을 신규 간호사들의 희생도 덧붙였다.
 
탁 회장은 “이번 실태 조사 결과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 체계가 허술하고 미흡하다는 것”이라며 “의료 현장을 묵묵히 지키며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들이 환자 간호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간호사들이 직면한 문제 해결에 국회와 정부, 의사단체가 함께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의료 공백 위기 대응 간호사의 근무 환경 위험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사진=안서희 기자]
이어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이 의료 공백으로 인한 간호사 법적 미흡 및 취업 문제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최 위원은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 387개소 가운데 참여 기관은 절반도 안 되는 151개소에 불과하다”며 “미참여 의료기관과 무응답 기관까지 포함하면 61%에 해당하는 기관이 여전히 불법 진료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간협은 지난해 불법 진료 신고센터에 신고된 의료기관과 미참여 의료기관을 매칭한 결과 152개소 중 133개소가 일치해 매칭률 88%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그는 “불법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업무 전환 간호사에게 최소 3년 이상의 임상 경력을 보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상황”이라며 “임상 경력 3년 이상의 간호사를 업무 전환하는 의료기관은 25개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 지원 업무에 대한 별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거나 1시간 미만의 교육만을 받은 채 현장에 투입되는 현실"임을 지적했다.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은 정부가 의료 공백을 해소하고 간호사의 진료 지원 업무 수행에 따른 법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사업이다.
 
최 위원은 의료 공백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로 ‘청년 간호사의 불안정’을 언급했다. 간협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47개 상급 종합병원 가운데 올해 졸업한 간호사를 채용한 의료기관은 단 한 곳이며, 13일 기준으로 발령받은 간호사는 1888명, 대기 간호사는 6376명이다. 반면 올해 채용 가능성이 있는 의료 기관은 10개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올해 채용이 없는 의료 기관은 31개소다.
 
최 위원은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5명으로 배치해야 하며 간호사에 대한 공정한 보상 체계 마련과 안전한 근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법적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간호사들이 충분히 교육받고 훈련된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환자 간호와 진료 지원 업무를 전담할 수 있는 간호사 수련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