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른자 사업 채권 회수?… 태영건설 반포 주거복합 공사 '올스톱'

한석진 기자 2024-05-28 04:39:33
최다 투자 선순위 채권자… 과학기술인공제회 회수 통보 강남지역 요지 위치 완판 가능… 전문가 "이해할 수 없다" 과기공 "이익 위한 최선"… 두달째 공사 중단에 안전 위협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연합뉴스]
태영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주거복합시설 사업장이 공사 중단 후 2개월째 방치되고 있다.
 
알짜 부지에 20층짜리 주거시설을 짓는 이 사업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에 들어가면서 과학기술인공제회(과기공)이 채권 회수 통보를 하는 바람에 약속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없게 돼서다.
 
추가 자금을 투입하느냐, 사업을 끝내느냐의 갈림길에서 과기공은 끝내 사업을 멈추고 부지를 파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태영건설 사업장의 처분 여부를 과기공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사업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선순위 채권자여서다. 과기공은 선순위 채권으로만 1520억원을 약정하고 실제 936억원을 투입했다.
 
그 결과 주요 대주(貸主)인 과기공이 대출금을 회수하겠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한 과기공 핵심 관계자는 "추가 인출해(돈을 더 넣어) 계속 진행하는 것과 스톱(사업을 멈추고 매각) 중에 뭐가 이익인지 판단것"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아주경제]
◆ 과기공의 몽니(?)··· 전문가 "이해할 수 없다" 

과기공의 이러한 선택에 업계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 사업장은 우리나라의 최대 ‘노른자위’로 꼽히는 반포동에 있는 데다 이미 본 PF 궤도에 올라 착공을 시작했다. 땅만 사두고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브리지론 단계의 사업장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에 따라 할인 분양까지 하더라도 완판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다.
 
착공 전 브릿지론 단계도 아니고 이미 공정률이 30%대인 본프로젝트파이낸싱(PF)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사업이 멈춘 것이다.

과기공이 사업장을 공매 처분까지 할 수 있는 만큼 대주단과 시행사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당 사업장이 공매 절차를 밟게 되면 적지 않은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돼 대주단과 시행사는 사업 정상화를 위해 과기공과 합의를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태영건설[연합뉴스]
업계에 따르면 과기공은 최근 대주 펀드 '브이아이 BH 일반사모부동산신탁'을 통해 반포동 주거복합시설 사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은 채권 회수 안내문을 대주단과 채권단에게 발송했다.
 
문서에는 채권 회수 결정 사유로 '사업 진행을 위한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다.
 
◆  방치된 사업장, 안전사고에 노출··· "과기공 결단 중요"

이 같은 사업 중단 결정에 반포 사업장과 관련된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반포 사업장이 공매 처분이 되면 선순위 대주단인 과기공은 그나마 일부 자금을 회수라도 할 수 있지만 후순위 대주단은 투자금을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매로 넘어가게 되면 태영건설이 책임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하게 돼 채무인수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후순위 채권자인 KB증권이 사업 재개를 위해 추가 자금을 투입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과학기술인공제회의 반대로 어려워졌다. KB증권 등 대주단, 채권단 등은 해당 사업장이 지리적인 입지가 좋고 이미 공사 진행도 순조롭게 되고 있었던 만큼 사업 정상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실사를 통해 사업 계속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아울러 반포 사업장이 공매로 넘어가게 된다면 과기공도 최소 2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리라 추정된다.
 
최근 경매시장이 침체해 있어 사업부제에 대한 평가 가치가 절하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직 과기공이 반포 사업장을 공매 시장에 넘기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반포센트럴PFV의 출자기업인 이스턴투자개발 관계자는 "약정상으로는 대주인 과기공이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마땅히 대응하는 방법이 없는 상태"라며 "과기공이 이익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 현재 반포 사업장은 공사 중단 상태로 계속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 이전에도 반포 사업장은 본PF로 수월하게 넘어가고 사업 진행도 잘 되고 있었다"며 "과기공이 일방적으로 공정률이 30%를 넘은 사업을 갑자기 중단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PF사업장 옥석 가리기가 본격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성이 양호한 사업장의 중단은 시장에도 부정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해당 사업장은 지난 3월 4일부터 2개월 넘게 멈춰 서 있다. 터를 10m 이상 파놓은 상태로 사업이 중단됐다. 흙막이 시설을 해놓았지만, 여름철 장마가 계속되면 침하가 우려되는 등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과기공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 할 이유다.
 
서울시내 한 건설현장 [연합뉴스]
◆ 반도 사업장은

반포 사업장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 지하 4층~지상 20층 규모 도시형생활주택 72가구와 오피스텔 25실 등 주거복합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사업은 2022년 11월 착공했으며 2026년 1월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다.
 
반포동 주거복합시설 사업은 2021년 3월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인 반포센트럴PFV를 통해 사업을 추진했다. 반포센트럴PFV의 주주사를 살펴보면 △이스턴투자개발(보통주 29.4%) △대우건설(보통주 19.6%, 우선주 33.3%) △KB증권(우선주 9.4%) △한국투자부동산신탁(우선주 5.9%) △에큐온캐피탈(우선주 2.4%) 등이다.
 
당시 반포센트럴PFV는 SPC인 에이블반포제일차, 에이블반포제이차 등을 통해 총 2380억원의 대출금을 조달했다. 각 트랜치별 대출금 한도는 △트랜치A 1520억원 △트랜치B-1 150억원 △트랜치B-2 350억원 △트랜치C 360억원이다.
 
과기공은 트렌치A(1520억원) 선순위, 트랜치B-2(350억원) 중순위로 해당 사업장의 대주단이 됐다. 태영건설은 시공사로서 2022년 8월 본PF 대출 약정을 맺고 공사를 시작했다. 약정에 따라 대출실행일로부터 태영건설은 41개월이 되는 날까지 완공하고, 대출채무도 인수해야 한다.
 
문제는 태영건설이 본격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과기공이 지난 3월부터 약정 맺은 대출자금 지원을 중단해 이미 30%까지 공사가 진행된 반포 사업장이 공사를 멈췄다는 점이다.
 
과기공은 지난 4월 채권 회수 통보까지 하면서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반포 사업장은 채권단협의회에서 태영건설의 59곳 PF사업장 중 정상화 계획이 제출되지 않은 유일한 사업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