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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루저'가 되는 대한민국

박경아 논설위원 2024-05-16 13:47:54
 
[이코노믹데일리]블러거들 사이에 알려진 숨은 명소 ‘태평 인셉션’. 경기 성남 수정구 태평동 영천산 아래 남쪽으로 펼쳐진 산자락을 따라 지어진 오래된 주택들 사이로 오르락 내리락 이어진 무한의 골목길을 보면 영화 ‘인셉션(Inception,2010년)’에 나오는 다차원 공간을 보는 듯해 이러한 별명이 붙은 곳이다. 

영화 촬영지가 되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출사가들이 찾아 드는 ‘태평 인셉션’은 그저 낡은 구경거리만은 아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수십년 전 서울 청계천에서 강제이주돼 온 이들이 20평씩(66㎡) 두부 모처럼 자른 땅에 집 짓고 살기 시작한 성남시 원조가 태평동을 비롯해 수십년간 개발에서 소외돼온 성남 구도심이다. 

나 자신도 태평동 주민이다. 대학생 아들과 함께 5년 가까이 이곳에 살고 있다. 아들 같은 경우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다 일반 단독 주택도 아닌 극한의 ‘태평 인셉션’에서 살고 있다. 이곳 생활이 한편으론 불편하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 놀라움도 적지 않다. 

일단 골목길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출퇴근 하며 걷고, 동네 마트 오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 운동량은 충분하다. 좁은 골목에 넘쳐 나는 차들로 인해 이웃간 주차 시비가 다반사지만, 싸우면서 얼굴 익히고, 그러다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싶은 측은지심에 어느덧 감정이 풀린 서로를 발견하곤 한다.

이곳 주택들은 이왕이면 집주인이 살면서 임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반지층에 지상 1, 2층짜리 다가구주택으로 지어졌다. 집주인이 반지층에 사는 일이 많다. 지상층이 세입자 구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지상은 청년 세입자들에게 내주고 반지층에 거주 중이다. 반지층이라도 경사가 심하다 보니 뒤쪽은 지하지만 집의 측면이나 전면은 지상에 노출돼 쾌적함을 누리기에 큰 무리 없다. 폭우가 와도 경사가 심해 빗물이 아래로 흐르니 침수 걱정도 없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창문을 여는 계절이 오면 옆집 사람들의 대화가 그대로 들린다. 바람 불면 날아드는 전 냄새, 고기 굽는 냄새, 간혹 옆집에서 속옷이 날아와 돌려주기도 민망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날은 옥상 길이 미숙한 어린 고양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하필 집안으로 뛰어들어 이틀간 농성하며 사료‧간식 잘 먹고 나갔다.

‘태평 인셉션’도 재개발 바람에 사라지나 했더니 웬걸, 부동산 경기가 경색되며 매매는 물론 전·월세까지 거래 빙하기에 들어간 지 오래다. 주민들에게 전단지 돌리던 정비업체도 철수하고, 개발 방식을 두고 가로주택이냐 재개발이냐 싸우던 주민 단톡방도 고요해진 지 오래다. 아랫동네 빌라 지역 역시 ‘빌라 사기’ 낙인 효과로 인해 거래 빙하기이긴 마찬가지다.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2021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 5174만명 가운데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51.9%라고 한다. 2015년과 비교했을 때 단독주택은 24.3%에서 2021년 20.6%로 줄었고, 같은 기간 아파트는 59.9%에서 63.5%로 증가했다. 연립주택은 14.6~15% 사이를 오갔다. 주택 가운데에는 20년 이상 노후주택이 73.9%였고 우리 집과 같은 30년 이상 노후주택도 50.2%에 달했다.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활성화 정책과 금융 지원, 주택 공급 대책 대부분이 아파트에 초점을 맞춰져 있어 소외감을 느끼는 가운데, 요즘 같은 부동산 거래 빙하기 속에서도 서울 강남 등 고가 아파트 지역에서는 거래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루저가 되는 세상,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일까 봐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