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만큼 일본이나 인도에 투자한다고 가정했을 때 각 국의 보조금 정책에 따라 최소 25조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조금 금액으로만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내 기업들이 미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인도로 옮겨갈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삼성전자에 64억 달러(약 8조9000억원) 규모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총 450억 달러(62조 3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화답했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인도도 자국 내 신규 공장 설립을 위해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일본은 반도체 기업 설비투자의 약 40%를 보조금으로 지원한다. 인도 정부는 반도체 시설 유치를 위한 100억 달러(14조원) 규모 보조금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 인도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구축한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인도 정부로부터 총 투자액 27억5000만 달러(3조7300억원) 중 19억5000만 달러(2조6700억원)를 지원받는다. 무려 71%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대로 일본과 인도에 투자할 경우 단순 계산을 적용해 보면 각각 무려 180억 달러(25조1000억원), 284억 달러(39조6000억원) 보조금을 받게 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그동안 미국, 일본, 유럽은 원가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나라가 한국과 대만 밖에 없었으니 글로벌 경쟁이라고 할 게 없었다"며 "이제는 정부에서 나서서 도와주니 원가 경쟁력이 좋아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보조금이 없는 한국은 앞으로 원가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보조금 정책에 미온적인 이유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상통했다. 안 전무는 "이미 국내에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해 공장을 유치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한마디로 정부에게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잡은 물고기"라고 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해외 기업들 입장에선 한국이 보조금 지급을 안하면 투자에 있어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일본이 미국만큼 지원금을 준다면 기업들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보조금의 액수보다 인프라, 클러스터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은 이미 미국에 큰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보조금을 더 준다고 해도 비교적 인프라가 부족한 일본, 유럽 등은 차순위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도 보조금이 아니더라도 클러스터 인프라 세제 혜택이나 여러 다양한 정책으로 지원해줘야 하는데 그런게 부족하다"며 "삼성전자를 중심에 두고 꾸준한 정책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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