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선거 때마다 그렇듯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편 만들기'가 시작됐다. 국민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반도체 산업의 특화 공약을 내세우기 바쁘다.
반도체 인재를 당원으로 영입하는가 하면, 반도체 벨트 부근 지역구인 용인·이천·수원 등을 중심으로 연합 공동 공약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 누구도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약속 아닌 약속'을 가감 없이 내뱉으며 말이다.
국민의힘은 핵심 공약으로 보조금 지원을 내놨다. 구체적인 금액과 예산 확보 방안 내용은 전무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약으로 '반도체 생태계 허브' 구축을 내세웠다. 세부적인 계획도 미정인 상황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정쟁에 빠져 시간을 낭비할 동안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 각국은 자국 반도체 육성을 위해 실질적인 투자에 한창이다. 자국에 시설을 짓는 기업에 미국은 2027년까지 약 75조원,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약 62조원, 일본은 투자 금액의 40%가 넘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결국 반도체 산업은 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발전은 단순히 정치적인 성과나 정치권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의 투자와 연구개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등 실질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기업의 목소리와 현장의 실정을 무시한 채 당리당략에만 치중하는 모습은 심히 우려스럽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당리당략을 위해 반도체 산업을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치권은 그저 기업들이 잘 나갈 수 있도록 '보조' 역할을 하면 된다.
이번 총선에서는 정치권이 단기적인 이익에 빠져들지 말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반도체 산업 특화를 위한 정책은 단순한 공약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장기적인 비전이 반드시 수립돼야 한다.
얼마 전 기자가 만난 반도체 업계 관계자의 푸념이 귓가에 맴돈다.
"실수도 반복되면 실력이죠. 세계 1·2위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점점 후퇴하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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