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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덮친 오픈AI '휴머노이드 쇼크'…200조 '로봇 전쟁' 돌입

성상영 기자 2024-03-21 06:00:00
생각하는 AI 로봇 '피규어01' 공개에 '충격' 국내 기업, 제조·의료 등 상용화 전력투구 위기 의식 속 소프트웨어 인재 확보는 과제
경기 광명시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을 로봇이 조립하는 모습 [사진=기아]
[이코노믹데일리] 미국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 업체 피규어AI와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가 함께 선보인 '피규어01'에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기계가 범접할 수 없다고 치부된 바둑에서 AI가 인간 기사를 이긴 지 10년도 채 안 돼서다.

피규어01 작동 영상 공개 후 "무섭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실로 다가온 로봇 시대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인지·판단·추론 능력을 갖춘 로봇이 산업 현장에 투입되면 한계에 봉착한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최대 200조원 규모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막이 올랐다는 평가다.

◆공장은 이미 로봇 세상, 韓 자동화 세계적 수준

20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LG·두산 등 주요 대기업은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 또는 로봇에 쓰이는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텔·식당 등 서비스뿐 아니라 물류와 제조, 의료까지 다양한 영역을 망라한다. 피규어01이 AI의 진화 수준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국내 기업은 로봇을 실제 사용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미 반도체·가전 제조 시설에서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 로봇이 활약하고 있다. 반도체만 해도 칩이 만들어지는 클린룸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설비 운용과 관리, 제품 검사, 패키징 등에 집중됐다. 가전은 일부 조립이나 품질 관리를 제외하고 공정의 많은 부분을 로봇이 대신한다. 삼성 반도체 공장 자동화율은 전(前)공정에선 90% 이상, 패키징을 비롯한 후공정에선 30% 수준으로 알려졌다. LG전자 핵심 생산 기지인 경남 창원 스마트파크는 자동화율 65%를 자랑한다.

특히 생산라인이 깔린 공장 건물 내부에서 자재와 제품을 운반하는 물류는 거의 100% 자동화됐다. 물류 로봇이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제품과 공정을 식별하고 알맞은 위치에 신속하게 옮겨놓는 식이다. 자동화된 공장에서는 그 흔한 지게차도 보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반도체 전·후공정 자동화 수준을 완전 무인화에 가깝게 높일 계획이다. LG전자도 미국 테네시 공장과 창원 스마트파크 자동화율을 70% 안팎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지능화 설비 구축이 진행 중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차·기아가 로봇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자동차 생산 공정은 프레스-차체-도장-의장(조립)-검수 순으로 진행되는데 현대차·기아는 차체 일부와 조립·검수를 제외한 대부분을 무인·자동화했다. 현대차·기아 공장의 자동화 정도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 기업 중에서도 앞서 있다.
 
LG전자의 물류 로봇인 'LG 클로이 캐리봇'이 활동하는 모습 [사진=LG전자]
◆"로봇 놓치면 다 잃는다"…기업들, 상용화 박차

국내 기업은 생산 과정에 로봇을 접목하는 단계를 넘어 로봇 자체를 제품화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시제품을 선보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생성형 AI를 탑재한 로봇 '볼리'를 공개하며 로봇 사업에 대한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가전과 스마트폰에 AI 기술을 적용한 삼성전자는 휴머노이드에 도전장을 낸 상태다. 지난해 로봇 벤처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확보한 데 이어 사람이 착용하는(웨어러블) 보조 로봇을 내놓을 계획이다.

LG는 AI연구원과 LG전자, LG이노텍 등 계열사가 로봇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접객과 서빙 등을 하는 'LG 클로이'를 판매 중인 LG전자는 최근 미국 AI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 지분을 취득했다. LG이노텍은 인지 기능 구현에 필수적인 부품인 카메라 모듈을 고도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역량과 2021년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밑바탕에 두고 사업을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다. 스케이트 보드 형태 플랫폼, 모터 등 구동 부품을 바퀴 하나로 합친 '유니휠', 어느 방향이든 자유롭게 주행 가능한 'e-코너 시스템'을 한 데 모아 신개념 모빌리티를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작업·의료용 보조 로봇도 조만간 상용화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피규어01과 같은 휴머노이드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에 있는 한 병원에서 두산로보틱스가 개발한 복강경 수술 보조 로봇으로 담낭 제거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두산로보틱스]
국내 기업 중 로봇 분야에서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기업은 두산이다. 두산그룹은 계열사 두산로보틱스를 필두로 협동로봇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단체급식 시설, 공항, 제조 사업장은 물론 병원에 도입 가능한 협동로봇 제품군을 보유했다. 최근에는 복강경 수술 보조 로봇이 대구의 한 병원에서 담낭 절제 수술에 투입되기도 했다.

전문가 영입과 인재 확보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20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혜경 한성대 AI응용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수시 채용 공고를 내고 로보틱스 개발과 제조 지능화, 웨어러블 등 로봇 분야 직원을 모집하고 있다. LG 역시 소프트웨어, 차량용 전자 부품과 함께 AI·로봇 사업 채용을 진행 중이다.

기업이 로봇에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스팅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400억 달러(약 54조원)로 추산된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1600억 달러(214조원)로 전망됐다. AI와 센서, 반도체, 구동 모터, 통신 등 미래 산업 핵심 기술이 집약된 만큼 "하나를 놓치면 다 잃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는 여전히 숙제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하드웨어 역량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보다 약한 게 사실"이라며 "고급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 마련이나 산학 협력 등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