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의 영향을 받는 정유 부문을 빼면 경영 환경도 나쁘지 않다. 주력 사업인 조선은 2022년부터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전력기기와 에너지솔루션 사업을 하는 HD현대일렉트릭은 세계적인 전력망 수요 증가에 힘입어 매출과 영업이익이 고공행진 중이다. 두산그룹으로부터 2021년 인수한 HD현대인프라코어를 비롯해 건설기계 부문도 해외에서 새롭게 판로를 개척하면서 실적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올해 내실 강화와 사업 다각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10대 그룹 가운데 투자 성향이 공격적인 편은 아니지만 '필요한 곳에 무리하지 않고 투자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명실상부 '국내 1등 조선그룹'으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엔진부터 탱크까지…조선업 기본에 충실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분야는 단연 조선이다. 수익성이 높은 선종 위주로 선별 수주를 지속하는 한편 친환경 선박 관련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STX중공업을 전격 인수하며 선박 엔진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꾀했다.
조선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오션·삼성중공업을 포함한 국내 조선 3사 중 가장 적극적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일주일 동안에만 14척을 따내는 '랠리'를 펼쳤다. 선종을 보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석유화학 제품 운반선(PC) 등 마진이 큰 선박이 많다. 최근 HD한국조선해양이 수주한 선박 중에는 탄소 배출이 적거나 거의 없는 LNG·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선도 다수 포함됐다.
핵심은 탱크와 엔진 기술이다. 물량 공세를 펼치는 중국 조선사에 맞서 국내 업체가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이것이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소와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수송하려면 기체를 액화해 부피를 줄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초고압·극저온을 견디는 탱크가 필수다. 또한 암모니아나 메탄올을 선박의 동력원으로 쓰는 것은 그 자체로 기술적 난이도가 매우 높다.
조선업은 2010년대 중반에만 해도 사양산업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HD현대는 선박 운항 자동화와 친환경선 도입 추세에 맞춰 건조(建造) 이외에 선박 부품과 운영 관리 같은 서비스 영역을 강화하고 있다. 해당 사업을 하는 HD현대마린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1조4305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2017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은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안정적 지배구조 속 존재감 키우는 에너지 사업
또 다른 먹거리는 전력망, 전력기기 등 에너지 인프라다. 에너지 안보 중요성 증대에 따른 전력망 확충, 중동 국가 신도시 개발 같은 호재가 당분간 이어지며 성장이 예상된다. 실제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조7028억원, 영업이익 3152억원을 거두며 2017년 독립법인 출범 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HD현대일렉트릭은 1173억원을 들여 충북 청주센트럴밸리 일반산업단지에 8만5420㎡(약 2만5000평) 규모 중저압 차단기 공장을 짓는다. 이는 HD현대가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추진하는 신공장 건설이다. 중저압 차단기는 발전소에서 보낸 전력을 수요지로 배분·공급하는 배전기기 부품이다.
HD현대가 짜임새 있게 투자하고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만들어 둔 영향이 크다. HD현대는 각 사업 부문별로 중간지주사를 만들고 여러 사업회사를 그 아래에 배치했다. 향후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마린솔루션, HD현대글로벌서비스 등 계열사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정기선 부회장의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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