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정유업계 새옹지마···분쟁과 기후변화에 수익성 개선

유환 수습기자 2024-02-22 18:08:32
분쟁으로 유럽산 석유 제품 수출길 차질 북극한파에 따른 북미 생산 감소분 수혜 입어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한 석유 저장 탱크·원유 파이프라인 장비 모습[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딱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정유업계의 악재로 여겨지던 중동 분쟁과 기후변화가 호재로 바뀌었다. 유럽산 석유 제품 수출길이 막히고 미국의 정유 설비 가동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조심스럽게 실적 개선에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22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2월 3주 차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14.9달러를 기록했다. 정제 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유가와 운영 비용을 제외하고 남기는 이윤이다. 통상 정유업계의 손익분기점은 4~5달러로 알려졌는데 그보다 3배가량 높은 것이다.

오름세도 견조하다. 지난달 3주 차(14.1달러) 기준으로는 0.8달러(5%) 올랐고, 지난해 10월 5주 차(9.1달러)에 비해선 5.8달러(63.7%) 상승했다. 올해 1~2월 석유 제품의 세계 수요는 약 1억 배럴로 전년 대비 2.1~2.7% 오르며 회복세를 보였다.

급락하던 정제 마진이 오름세를 보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분쟁과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예멘의 '후티 반군'을 자극했고 하마스를 지지하는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서방 측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스위스 MSC와 덴마크 머스크 등 주요 해운사가 안전 문제로 홍해 항로를 포기하자 유럽산 석유 제품의 아시아 수출길이 막히며 신규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북미 지역의 북극 한파도 상승을 부추겼다. 지난달 미국에선 체감 온도를 영하 50℃까지 떨어뜨린 한파가 몰려왔다. 미국 영토 80%가 영하권으로 떨어졌고 1억5000만명에게 한파 경보가 내려졌다. 한파 영향에 정유 설비 가동률도 지난해 말 93%에서 지난달엔 80%까지 급감했다. 해당 공급 감소분을 아시아 정유업계가 챙기며 정제 마진 상승의 수혜를 입었다.

또 중동에서 분쟁으로 생긴 물류 차질 우려도 지금은 해소된 모양새다. 후티 반군이 활동하는 홍해 부근과 국내로 원유를 수입하는 항로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재한 '중동 해상 물류 긴급 점검' 결과 국내 원유 공급망에 피해가 있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유 4사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 4사 합산 매출은 189조7310억원, 영업이익은 5조246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1.3%, 62.8% 감소한 실적이다. 세계적 고금리 상황으로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하반기 정제 마진이 하락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 마진 상승으로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2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중으로 예측하긴 어렵다"며 "다만 지금과 같은 추이가 이어진다면 작년보다는 실적이 좀 더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