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업계는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 중국을 따돌리겠다는 단순한 해법을 내놨다. 정부도 2027년 디스플레이 세계 1위 탈환을 구호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다.
◆LG디스플레이 '대형 독점' 저문다…3대 신수종에 명운
한국 디스플레이 양대 축 중 하나인 LG디스플레이는 오랜 기간 영업적자를 낸 와중에도 R&D 투자액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사 R&D 지출은 2020년 1조7400억원에서 지난해 2조4315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1조2248억원을 썼다.
이 기간 매출액 대비 R&D 비용은 7.2%에서 9.2%, 13.4%로 높아졌다. 이는 반도체·이차전지 등을 포함한 첨단 산업 기업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LCD를 발판 삼아 한국을 꺾은 중국은 대형과 비교해 수율(생산량 중 양품 비율)을 높이기 유리한 중소형 패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성과를 거뒀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매출 비중을 기준으로 중국 업체인 BOE는 올해 상반기(1~6월) 중소형 OLED 점유율이 10% 중후반대였다. LG디스플레이는 10% 초반대로 BOE에 뒤졌다. 1위는 50%대를 기록한 삼성디스플레이다.
TV에 주로 들어가는 대형 패널은 상황이 다르다. LG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 점유율이 60%에 육박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80인치대 초대형 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모회사인 삼성전자가 지난 8월 출시한 83형 TV에는 LG디스플레이 OLED 패널이 탑재됐다. LG디스플레이는 중소형 제품에서 약세를 보이는 대신 대형 시장에서는 확연히 우세하다.
옴디아가 집계한 상반기 TV 시장 점유율 집계를 보면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판매 금액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2%로 1위, LG전자가 16.2%로 2위였지만 OLED TV 판매량 기준 점유율은 LG전자가 55.7%, 삼성전자가 14.7%였다. 관련 업계에서는 '중소형은 삼성, 대형은 LG'를 공식처럼 여겨 왔다.
LG디스플레이는 2011년 세계 최초로 55인치 TV용 OLED 패널을 개발하며 이 분야 강자로 올라섰다. 2019년에는 현존 최대 크기인 88인치 OLED 패널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경쟁사인 삼성디스플레이가 10여년 전 대형 OLED에서 손을 뗀 것과 대비를 이룬다. 그 대신 삼성디스플레이는 양자점(퀀텀닷·QD) LED에 집중했다. 두 회사 간 디스플레이 기술 경쟁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화질 공방전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중소형 OLED에서 중국이 약진하는 것과 달리 대형은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아직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BOE는 내년 대형 OLED까지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드려면 빛을 내는 유기물질을 일정하게 증착(기체 상태 물질을 입혀 응고시키는 것)시켜야 하는데 면적이 클수록 불량이 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삼성이 대형 패널 개발을 포기한 이유도 결국은 양산 가능한 수준으로 수율을 높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LG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 수율 개선을 위해 기술 개발과 시험 생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RGB 컬러 필터를 넣고 흰색(W) 소자를 추가한 WOLED를 해법으로 찾아냈다.
공정에서 이를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원리는 제시된 만큼 시간이 지나면 대형 OLED도 중국의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LG디스플레이는 그 대안으로 최근 플렉시블·투명·마이크로 OLED에 R&D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대형화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77인치 플렉시블·투명 OLED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0.42인치 마이크로 OLED 실물을 공개했다. 과거 대형 OLED 경쟁에서 집요한 R&D 투자로 현재 위치에 오른 만큼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곧 가시화된 성과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디스플레이도 R&D 예산으로는 LG디스플레이에 뒤지지 않는다. 삼성디스플레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이 회사 경상연구개발비는 △2020년 2조160억원 △2021년 2조2557억원 △2조5280억원으로 매년 2조원 이상 R&D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투자처는 폴더블 스마트폰용 OLED와 게이밍 모니터용 커브드 LCD 등이다.
중소형 OLED 시장을 주름잡고는 있지만 대형에서는 지난 10년간 벌어진 LG디스플레이와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자사 TV에 LG디스플레이 83형 패널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패널은 워낙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LG디스플레이가 대형 OLED를 위해 쏟아부은 10년에 비하면 삼성디스플레이의 1년은 발끝"이라고 평가했다.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LG가 장악한 OLED에 대적할 패널은 양자점(퀀텀닷·QD) OLED다. 자발광 디스플레이 일종인 QD-OLED는 청색 광원을 전체적으로 깔고 그 위에 RGB QD 발광층을 덮어 색을 표현한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의 QD-OLED는 개발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LG디스플레이가 10년간 가꿔 온 대형 OLED 패널 기술력보다 기술력이 보장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생산능력도 LG와 비교해 1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공개하기 이르다고 판단해 공시하지 않은 개발 실적이 있을 수 있고 중소형 위주로 R&D 투자에 손을 놓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패널에서 느끼는 위기감과 대형에서 벌어진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자동차를 꼽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나 올리버 집세 독일 BMW그룹 회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페라리, BMW 등으로부터 수주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XR 기기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OLED도 삼성디스플레이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글처럼 얼굴에 착용하는 XR 기기는 1인치(약 25.4㎜) 미만 화면을 통해 눈앞에서 현실감 있는 화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성상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는 작은 크기에 매우 조밀하게 화소를 구현하고 눈을 보호해야 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발족한 '마이크로 디스플레이팀'을 중심으로 스마트폰을 대체할 미래 폼팩터(전자기기 규격과 사양)인 XR에 대비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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