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된 금융감독원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년부터 올해 7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전 사고액은 991억9300만원으로 집계됐다. 그중 고객 예금 및 회삿돈을 가로채는 횡령 사고 유형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은행도 심각했다. BNK경남은행은 역대 최대 규모의 금융권 횡령 사고를 냈는데, 그 규모는 맨 처음 500억원대로 알려졌지만 26일 현재까지 재차 확인된 금액만 3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DGB대구은행은 직원들이 1000여 건이 넘는 고객 문서를 위조해 불법 증권 계좌를 개설한 것이 밝혀졌다.
특히 자체 감사를 실시하지 않거나 감사를 하더라도 부실했던 점을 비롯 미흡한 모니터링으로 사고를 발견 못 하고 누락시킨 점이 그 규모를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내부통제를 위한 기술적 시스템 강화와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에서 자금세탁방지(AML) 업무를 맡았던 정통 은행원 출신인 정지열 프로비트(ProBit·가상자산 거래소) 이사는 적극적인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 이사는 "사람의 힘으로 모든 범죄를 막기는 어렵다"면서 "레그테크(RegTech) 등 내부 시스템 강화를 위한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레그테크란 레귤레이션(Regulation·규제)과 테크놀로지(Technology·기술)를 합친 말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준법 감시·내부 통제 등의 규제 준수 업무를 효율화하는 혁신 기술을 뜻한다. 이상 거래 감지 시스템(FDS), 자금세탁방지, 고객 데이터 유출 방지, 재무 건전성 유지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 위주의 은행권 내부 분위기를 언급하며 이런 측면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윤리 교육이 미흡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성과와 이익에만 몰두하다 사고가 나는 것"이라며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윤리 교육 강화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내부 통제를 잘하기 위해선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가장 중점이라고 강조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현행법 개정이 절실하다"면서 "현재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금융사지배구조법은 중대 사고가 아닌 이상 처벌할 수 없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횡령 금액을 회수했다고 해서, 초범이라서 봐주는 것이 아닌 엄벌주의가 반드시 작동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는 CEO 대상으로 강력한 처벌보다 내부통제 기준 마련 정도의 지침 선에서 끝나고 있다"며 "범죄가 중대하든 경미하든 책임을 지기 위해선 CEO의 해고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법조계에서는 관리 사각지대에서 금융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업무(위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불시에 일정 기간 강제 휴가 조치하는 명령휴가제 시행이 잘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금융변호사회장을 맡고 있는 이지은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변호사는 "경남은행의 경우 15년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같은 위험 업무를 담당하던 범행 당사자에게 한 번도 명령휴가제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국내 금융사들이 전체적인 운영 리스크 관리가 아닌, 회계적인 측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법률 위반 여부를 적극적으로 사전 예방 리스크 영향평가 관리에 반영하는 등 법과 유기적인 자세로 시행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리스크 관리에 대해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이와 관련한 법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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