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없는 경제가 없고 경제 없는 국가도 있을 순 없다. 강경한 자유시장론자들조차 정부가 필요악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정부는 국가 권력을 위임받았고 기업과 가계의 경제활동을 규율·통제한다.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지금도 물가를 잡겠다,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겠다 같은 이유로 공공연히 개입하지만 30년 전에는 그 기세가 남달랐다. 대놓고 기업 총수들을 모아놓고 돈을 내라 하는가 하면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은 말 그대로 날려 버렸다. 정부에 협조적인 기업은 확실한 보상을 받았다.
정치(政)와 경제(經)의 이러한 커넥션을 일컬어 정경유착이라고 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공판에서 한 말을 빌리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소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며 정경유착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경유착 한가운데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전경련은 기업의 대정부 로비 창구로 지목됐다. 이른바 4대 그룹인 삼성·SK·현대자동차·LG그룹 총수는 모조리 국회로 불려가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고 대답할 때까지 호통을 들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반대급부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전경련은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4대 그룹이 탈퇴하며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측면도 있었지만 정부의 홀대가 만만찮았다.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7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꾸고 4대 그룹 복귀를 눈앞에 뒀다. 한경협은 정경유착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지 답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이 정경유착이란 게 참 고깝게 들린다. 국난 때마다 기업이 내놓는 수십, 수백억원은 무엇이고 온전히 정부가 망쳐놓은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기업이 물심양면으로 수습한 일은 무엇인가. '정경'유착이라는데 정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고 경 탓만 한다. 한 손으로만 손뼉을 칠 수는 없는 법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생전 발언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요즘이다. 구 회장은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한 국회의원이 "앞으로 정부에서 돈을 내라고 하면 이런 자리(청문회)에 또 나올 것인가"라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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