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자동차보험 진료비 증가세 확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방 세트청구(복수진료)'가 최근 5년간 네 배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방진료기관이 많아지면서 경쟁이 심화하고 세트청구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5일 보험연구원은 국내 대형 손해보험사의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인배상 진료비의 75%를 차지하는 9급 이하 상해급수 환자가 한방진료기관에서 받은 진료 990여만건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진료 사례를 분석한 '자동차보험 한방진료 세트청구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손보사가 상해급수 12~14급 경상환자에게 지급한 한방 세트청구 규모는 2017년 1926억원에서 지난해 744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기준 전체 한방진료비 절반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세트청구란 한방진료에서 가능한 침술, 구술, 부항, 첩약, 한방물리, 약침, 추나, 온·냉경락 8가지 진료 가운데 6가지 이상을 내원 환자에게 한 번에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진료비를 기준으로 집계한 경상환자의 한방병원 세트청구 비율은 2017년 55.2%에서 지난해 82.4%로 올랐다. 상해급수 기준 중상해로 분류되는 9~11급 비율(2017년 43.1%→2022년 74.0%)보다도 높았다.
연구원은 이런 진료비 상승이 자동차보험 보험료가 오르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대인배상 진료비 가운데 한방진료 규모는 1조4636억원으로 외과의 1조506억원을 웃돌았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방진료기관은 증가한 반면 환자 수는 감소했다는 점을 과잉 진료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의원은 2017년 1만4111개에서 지난해 1만4549개로, 한방병원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312개에서 546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환자 수는 2019년 79만명에서 2020년 75만8000명으로 줄어드는 등 감소세가 이어졌다. 또 한방병원 1곳당 진료비는 2020년 11억8300만원에서 2021년 10억9500만원으로 7.4% 감소했다. 이런 현상으로 수익이 악화하자 각 진료기관이 세트청구를 이용해 진료 건수나 비용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한방진료기관 수가 늘어나면서 상해급수 12~14급 경상환자에 대한 세트청구가 늘어나는 것을 '공급자 유인효과(Supplier Induced Demand)'로 볼 수 있다고 전 선임연구위원은 정의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미한 부상인데도 (한방 진료를) 종류별로 다 처방하는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적 제재가 어느 정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피력했다.
한방진료기관 수가 늘어나는 것 외에도 복수진료에 대한 심사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점도 세트청구 증가 원인으로 언급됐다. 업계 의견처럼 경상환자에게 과한 복수 진료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상 제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 복수 진료에 관한 규정은 '양·한방 협진 시의 중복진료' 뿐이다.
또 제한적인 복수 진료에 대한 심사기준으로 가해자(보험회사)가 한방진료 수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때가 발생하지만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에는 반영되지 않아 세트청구가 지속된다는 해석이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가해자들의 피해자 진료에 대한 불만 제기가 늘어날 수 있어 이를 관리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반면 한의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석 결과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며 반박했다. 그는 "원래 한의원에는 상해급수가 경상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자동차보험으로 내원했다고 해서 (진료를) 추가로 시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시 발생한 통증을 치료하는 데 다 필요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세트청구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부 한방병원 및 한의원이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경상환자를 입원시켜서 입원비와 치료 횟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보험이 적용된 경상환자는 입원 시 1일 2회 치료를 시행하므로 입원비를 포함한 진료비가 급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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