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삼성, 혹한기에도 무르익는 'JY시대'…변화의 봄은 다가온다

성상영 기자, 고은서 수습기자 2023-04-27 08:54:01
이재용, 美서 '경제 외교'로 취임 6개월 맞아 국내선 '현장경영', 해외선 '네트워크' 보여줘 파운드리·바이오 동력으로 '뉴 삼성'에 박차 이사회 복귀로 '책임' 강화하고 지배력 높여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방문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6개월'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27일 공식적으로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실질적인 총수로서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집단을 이끌었다. 직함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 무게는 사뭇 다르다. 'JY시대'에 들어선 삼성의 지난 6개월은 어느 때보다 숨가빴고 앞으로는 더욱 변화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27일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가운데 취임 6개월을 맞이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방미 일정 중 'JY 네트워크'가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관심이다. 이 회장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양국이 미래 70년의 공동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기업 간 협력을 강조했다.

◆JY, 불확실성 돌파구는 '현장경영·네트워크'

이 회장은 지난 6개월간 국내에선 'JY', 해외에선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는 등 국내외 현장 경영을 이어갔다. 급박한 경영 환경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 회장이 위기 극복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지 시종일관 관심이었다.

이 회장은 국내·외에서 이어진 현장 경영을 통해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취임 직후 광주에 있는 한 협력사를 방문하며 '상생' 의지를 보였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화재 등 계열사를 잇따라 방문한 자리에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과 격의 없는 소통으로 화제가 됐다. 대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가운데 해외 사업장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양자택일' 기로에 놓인 이 회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미국이 공개한 반도체 투자 지원 조건에 영업 기밀을 제출하고 초과 이익 75%를 미국과 나눠야 한다는 등 독소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정부는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미국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반도체를 못 팔게 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물량을 대신 공급하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반도체 보조금 문제는 정부의 외교 채널로 풀어야 할 사안인 만큼 이 회장으로선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팀 쿡 애플 CEO 등 현지 기업인과 접촉하며 기업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제2의 반도체'로 낙점한 바이오 분야에서는 미국 모더나 또는 바이오젠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재용 회장이 취임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28일 광주에 있는 삼성전자 협력회사 '디케이'를 찾아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JY가 구상한 '뉴 삼성' 동력은 파운드리·바이오

삼성은 30년간 메모리 반도체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다. 초격차 전략으로 혁신과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사이클 산업이긴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와 제품 가격 하락, 그리고 이어진 반도체 한파는 유난히 시렸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적자에 삼성전자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끝내 감산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치킨게임에 종지부를 찍었다'거나 '업 턴(상승 전환)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등 여러 해석이 나온다. 분명한 사실은 메모리 반도체만으론 왕좌를 지켜낼 수 없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육성에 사활을 걸었다.

이 회장은 파운드리 선두인 대만 TSMC를 넘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2조5000억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국내에는 경기 용인시에 300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계획대로라면 삼성전자는 2030년 무렵 세계 1위 종합 반도체 회사로 거듭난다.

바이오 분야 역시 '뉴 삼성' 구상의 핵심 동력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축인 이 사업은 이건희 선대 회장 때부터 중요성이 언급됐다. 이재용 회장은 2032년까지 바이오 사업에 7조5000억원을 투자해 바이오 의약품 위탁 개발과 생산(CDMO) 분야 초격차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삼성의 '바이오 굴기(倔起)' 선언 이후 성과가 점차 나타나는 점은 고무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출범 10년 만에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올해 인천 연수구 송도에 완공 예정인 제4공장까지 더하면 생산 능력은 총 60만 리터(L)까지 늘어난다. 삼성전자 또한 여러 의료 전문 업체와 협업하며 의료기기, 헬스케어 특화 웨어러블 기기·솔루션을 내놨다.
 

이재용 회장이 지난 2월 충남 천안시 삼성전자 천안사업장을 방문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삼성 지배구조 흔들 '세금·법'…필요한 건 '시간·돈'

이재용의 삼성은 외형 변화도 요구받고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 지분과 순환출자 구조로 유지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총 12조원에 이르는 상속세 탓에 미세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국회에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삼성생명법(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 회장을 포함한 삼성 오너 일가는 이달 말로 예정된 3차 상속세 납부일에 맞춰 계열사 주식을 팔거나 담보 대출을 받아 현금 마련에 나섰다. 이들이 내야 할 세금은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3조1000억원, 이재용 회장 2조9000억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2조6000억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2조4000억원이다. 오너 일가는 상속세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해 오는 2026년 4월까지 세금을 완납할 예정이다.

가족 중에는 지분을 매각한 사람도 있다. 이서현 이사장은 삼성SDS 지분 1.95%(151만7302주)를 모두 팔아 주목을 받았다. 지난 4일 시가로 환산하면 1700억원이 넘는다. 삼성SDS는 이재용 회장 가족 등 특수관계인→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S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에서 가장 끝에 있는데다 이 이사장이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아서 지배력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

관심사는 이재용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신용대출을 받았지만 계열사 주식이 담보로 잡히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지배력 유지에 큰 문제가 없는 삼성SDS 지분(9.2%)을 팔 수 있다고 보지만 10% 가까운 물량을 던지기에는 총수로서 책임 경영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예상돼 쉽지 않다.

이 회장으로서는 지배력을 잃지 않으면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오히려 상속세 납부에 3조원 가까운 돈을 쓰고도 지배력을 높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연 평균 5000억~6000억원 수준인 세금을 배당과 대출로만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은행의 '배려'에 의존할 수도 없다.
 

이재용 회장이 지난달 중국 텐진에 있는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내부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삼성전자]


등기 임원 복귀와 지배구조 개편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이유도 이처럼 복잡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미등기 임원인 이 회장은 2017년부터 보수를 전혀 받지 않아 왔다. 이 회장이 꼭 미등기 임원이어서 무보수로 일한다기보다는 책임 경영을 상징하는 차원에 가깝다. 그러나 총수로서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삼성은 향후 준법감시위원회가 의견을 내면 이 회장의 이사회 복귀 여부를 논의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8월 사면으로 취업제한이 풀려 자격에는 문제가 없지만 삼성물산 합병 관련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몰라 이사회 복귀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역시 언젠가 풀어야 할 숙제다.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삼성생명법은 삼성생명·화재를 축으로 하는 금융 계열사와 삼성물산·전자가 중심인 비금융 계열사 간 출자 고리를 강제로 끊어내는 내용이다. 이 회장으로선 지배력을 잃을 수 있어 논란이 돼 왔다. 상속세 낼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시간적 여유마저 사라져 버린다.

국회에서 법안 논의가 더 진전되지 않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국회 정무회원회는 지난해 11월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 법안을 상정한 뒤로 전체회의 안건으로는 올리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가 1년 남짓 남아 '임기 만료 폐기'도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