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반도체 초격차, 지금이 기회다...'K-칩스법'에 거는 기대

성상영 기자 2023-04-18 10:26:01
반도체 불황 속 무역적자 늪에 빠진 한국 '메모리 1등' 안주하며 국가적 지원 소홀 K-칩스법과 용인 클러스터 '양 날개' 기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준비된 지금이 중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7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반도체 생산 현장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이코노믹데일리] 지난해 사상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한국이 올해 들어서도 수출 감소세를 바로잡지 못하며 허덕이고 있다. 그 배경으로 석탄·석유·가스 등 에너지 수입 가격이 크게 늘어난 점이 지목되지만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가 제몫을 해내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라는 영예에 안주한 채 국가 차원에서 산업을 지원하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17일 현재까지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주요 경제단체에서 나온 무역 통계 자료를 종합하면 한국 수출은 전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이날 관세청이 내놓은 '3월 월간 수출입 현황 확정치'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551억 달러(약 72조1400억원)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13.6% 급감했다. 1분기(1~3월) 누적 무역수지는 224억 달러(29조34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관세청은 수출 감소 폭이 커진 이유에 대해 지난해 3월 월간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찍으면서 기저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같은 기간 33.8%나 감소하면서 글로벌 업황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로 8개월 연속 내리막을 걸었다.

◆메모리 부진에 무너진 '반도체 1등' 자존심

한국무역협회(무협) 집계를 보면 반도체 위기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수출 규모는 24조9045억 달러(3경2635조원)에 이르렀는데 이 가운데 한국은 2.74%(6835억8400만 달러)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정점을 찍은 2017년(3.23%)보다 0.49%포인트(P) 쪼그라졌다. 한국 수출액 가운데 반도체 비중은 2021년 19.9%에서 지난해 18.9%, 올해 1분기에는 13.6%까지 떨어졌다. 반도체 수출 실적에 따라 무역수지가 울고 웃은 결과다.

반도체 수출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견인해 왔다. 동력은 D램과 낸드플래시를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였다. D램만 놓고 보면 전 세계 생산량 70% 이상이 두 회사에서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사업부 매출 가운데 69.6%(삼성디스플레이 제외)를 메모리로 벌어들였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매출 비중이 90%를 훌쩍 넘는다. 메모리 시장 상황이 두 기업 실적을 좌우하고 국가의 무역수지까지 뒤흔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를 필두로 90년대 초중반 일본을 꺾은 뒤 미국과 경쟁하며 줄곧 세계 최정상에 서 있었다. 세계 메모리 1등이라는 타이틀은 양날의 검이 됐다.

메모리 반도체는 연관 품목인 개인용 컴퓨터(PC)와 모바일 기기 수요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 그리고 미국 주도로 금리 인상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소비 시장이 얼어붙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지만 최근에는 그 파동의 폭이 유난히 크다.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올해 1분기 10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둔 점을 생각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높은 메모리 의존도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약 13조3000억원보다 25%가량 줄어들긴 했지만 조 단위 영업 적자가 예상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는 훨씬 양호한 성적표다.

◆기업·정부가 함께 외쳐야 할 "투자, 인재, 기술"

기업은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지속하며 시장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의존을 탈피하고 파운드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2019년 내놓은 청사진에는 오는 2030년까지 171조원을 파운드리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에 투자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지난달에는 이 분야 투자 금액을 대폭 늘려 3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8인치 웨이퍼 기반 칩을 생산하는 키파운드리를 인수하며 비메모리 반도체에 발을 담갔다. 메모리 영역에서도 단순히 저장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연산 기능을 통합한 고성능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완료하는 등 제품 다각화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데 반해 국가적 지원은 미미했다.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전략 첨단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게 최고 15%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K-칩스법) 개정안은 지난달 말에야 극적으로 통과됐다.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특화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정부 계획도 이달 들어서 발표됐다. 최근 십수년간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정부·국회가 내놓은 대책으론 거의 유일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하드웨어(반도체 산단)와 소프트웨어(K-칩스법)가 동시에 갖춰진 지금이 향후 20~30년을 좌우할 '골든타임'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에서 유일한 반도체 전문가로 꼽히는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우리가 30년간 메모리 반도체 1등을 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낼지는 의문"이라며 "기술과 인재를 통해 기술 패권을 계속해서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