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가스요금 폭등, 가스시대 종말을 가져올까

박경아 기자 2023-03-21 06:00:00
미국·유럽에서는 가스 난방, 가스 스토브 신설 금지 정책 잇따라 추진 가스 연소 물질은 암 발생 원인이 되기도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란 어려움을 겪은 뒤 탄소저감과 에너지 독립을 목표로 가스 사용 퇴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진은 독일 서부 지역의 광산 배경 풍력 발전소 [사진=AFP 연합뉴스 ]

[이코노믹데일리] 올 겨울, 난방비 폭등으로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가구마다 불만이 폭발했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대(對) 유럽 가스 공급을 끊으며 프랑스 파리 아파트 난방비가 우리 돈으로 “100만원을 넘었다”더라가 우리에게도 현실로 들이닥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2월 우리나라의 가스요금 인상 폭등에 대해 국제 천연가스요금이 상승하기 시작한 2021년 3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총 7차례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최대 10배까지 폭등했으나 한국가스공사가 국내 가스요금을 계속 동결하다 결국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인상에 나서다 보니 한 번에 급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스를 둘러싸고 취약계층을 위한 가스요금 할인, 에너지바우처, 등유바우처 등을 지원하며 어느 때보다 그 위력을 절감하고 있는 반면 우리보다 앞서 주택용 가스요금이 2~5배 급등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신축 건물의 가스 난방과 가스 스토브 사용을 줄이는 탈(脫) 가스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가스는 다른 화석연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같은 양의 에너지를 만들 때 발생하는 석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10이라면 가스는 5~6 정도다. 이 때문에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난 2021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5년부터 화석연료 보일러 판매 금지를 제안했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에 맞서 가스를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자 유럽에서 탈가스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탄소저감·에너지 독립 위해 독일은 2024년, 영국은 2025년부터 신규 가스·석유 난방 금지

코트라(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지난 2월 말 오는 2024년부터 건물 부문의기후 보호 가속화를 위해 신규 가스 및 석유 난방 시스템 금지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이달 초 난방시스템 교체에 대한 수십억 유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의 이러한 전환은 기후 분야 목표를 달성하고 화석에너지 수입에 대한 의존도 감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독일의 총 에너지 수요의 3분의 1 이상이 건물 난방과 온수 공급에 사용되고 있으며 열 수요의 80% 이상이 화석연료로 충당되고 있다. 독일 경제·기후보호부는 신규 난방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재생에너지 비중 65% 확대 목표를 당초 2025년에서 2024년으로 앞당겨 추진하며 올 중반경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은 오는 2025년부터 모든 신축 주택에 가스 및 기름 보일러 설치를 금지하기로 했다. 가스보일러 퇴출 정책은 지난 2019년 테레사 메이 당시 총리 내각이 발표할 정도로 화석연료 사용 저감 마인드가 일찍부터 움트고 있었다. 

유럽에서 화석연료 대용으로 떠오른 것이 전기 히트펌프다. 전기 히트펌프란 기존 보일러를 대체하는 공조시스템이다. 공기·땅·물이 가진 열을 전기로 끌어오는 형태로, 냉난방이 가능한 데다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다. 그간 비싸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비용이 급등하며 상대적으로 저렴진 데다 유럽 각국 정부가 전기 히트펌프 설치에 보조금을 지원하며 장려하고 있다. 

코트라 브뤼셀 지부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 히트펌프 판매량은 2021년 34%, 2022년 38% 증가했으며 유럽연합(EU) 전역에 설치된 전기 히트펌프는 약 2000만개로 알려졌다. EU는 2030년까지 전기히트펌프 3000만개 설치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 LG전자의 대유럽 전기 히트펌프 수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친환경 냉난방 시스템인 히트펌프 'EHS(Eco Heating System)'가 유럽 시장에서 지난해 1~11월 전년 대비 118%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달 13~17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냉난방 공조 전시회에 삼성전자와 나란히 참가한 LG전자 역시 지난해 전기 히트펌프 매출이 전년 대비 120%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 히트펌프는 기존 가스나 기름 연료를 쓰는 보일러 대비 효율이 높고,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적어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제품 라이프스타일 히트펌프 'EHS'[사진=연합뉴스]

◆ ‘건강 요소’까지 더해진 미국의 가스 퇴출 움직임

미국에서도 가스 난방, 가스 스토브가 각지에서 속속 퇴출 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어리어 대기질관리지구(BAAQMD)’ 이사회는 오는 2027년부터 천연가스 난방시설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로 하고 지난 16일 신규 설치되는 온수기와 보일러는 질소화합물을 일절 배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채택했다. BAAQMD는 현재 베이 에어리어 가구의 약 3분의 2가 천연가스 이용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번 규정으로 매년 조기 사망의 85%가 예방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환경에다 건강 문제까지 더해졌다. 최근 미국 소비자제품 안전위원회가 소아 천식의 8건 중 1건이 가스레인지 사용에 기인할 수 있고, 가스 연소 때 발생하는 이산화질소가 호흡기와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한 후 가스 스토브를 전기 인덕션레인지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외에도 새너제이 등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도시와 워싱턴주 시애틀도 신축 건물에 가스 연결을 금지하거나 가스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뉴욕시는 올해 말부터 7층 이하 신축 건물에 가스 난방·조리기구를 설치할 수 없게 했고 그 이상의 고층건물은 2027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뉴욕주에서도 가스 난방·취사 금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실내 공기 오염 등을 이유로 가스레인지 퇴출을 추진, 올 하반기부터 가스레인지 사용 위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방침이다.

◆ 우리나라의 가스 사용 대안은 언제쯤, 무엇이 될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렴한 연료는 도시가스다. 산업자원통상부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우리나라 전국 229개 시군구 중 216개 시군구의 약 2008만 가구(잠정)가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있다. 전국 도시가스 보급률은 약 85%로 추정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000kcal 열량을 내는 소요 비용이 도시가스는 116.64원인 반면 등유는 208.36원, 액화천연가스(LPG)는 221.56원 등으로 도시가스가 가장 저렴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기 인덕션 사용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전기 인덕션이 이산화탄소, 암 유발 물질 발생은 적어 친환경적이지만 아직은 가스 레인지와 비교하면 비용이 높다. 또 화력도 전기 인덕션이 더 강하지만 간접가열 방식이어서 깊은 프라이팬 웍을 높이 튕겨 불맛을 내는 웍질을 하기에 적합치 않아 식당 주방에서 가스레인지가 오랫동안 사용되는 바람에 최근 아이들 식사를 준비해주는 급식조리사 가운데 폐암 환자가 발생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마인드가 필요한 곳은 큰 기업이나 정부뿐 아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