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복귀하지 않는 배경으로 사법 리스크(위험)가 거론됐다.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탓에 사내이사 선임 시기도 예단하기 어려워졌다.
15일 삼성전자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매주 1~2차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한다. 목요일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로, 3주에 한 번 금요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관련 재판이 열린다. 아직까지 검찰과 삼성 측이 신청한 증인을 불러 심문하는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전날(14일) 이사회를 열고 오는 3월 열리는 정기 주총 안건을 확정했다. 이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이 올라갈지 관심을 모았으나 DX부문장인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 선임안만 의결됐다. 삼성전자는 정기 주총에서 재무제표 승인, 사내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논의한다.
이 회장의 사내이사 복귀 걸림돌이 된 재판 2건은 빨라야 2024년 말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이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양측이 신청한 증인을 합치면 100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올해 1심 판결이 내려질지도 불확실하다.
이 회장이 받는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과 외부감사법 위반 등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 기업 가치를 떨어뜨려 이 회사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면서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는 의심을 받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은 앞선 혐의에서 파생된 사건이다. 제일모직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당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채를 회계장부에서 누락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삼성 측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를 부풀려 이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제일모직 가치가 고평가됐고 합병 후 삼성물산 지분 확보로 이어졌다고 봤다.
이들 재판 모두 경영권 승계가 핵심이다. 앞서 이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1년 가까이 복역했다.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엮이며 재판 3건이 잇따라 진행됐다. 2017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 회장이 재판을 받은 기간만 6년을 넘겼다.
재판이 이토록 오래 끌게 된 분수령은 2020년 6월 나온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권고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칠 법한 사건을 놓고 검찰이 기소권을 남용하지 않도록 법조·언론·학계 전문가가 모여 기소 여부를 권고하는 기구다.
수사심의위는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검찰에 권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불복해 이 회장을 기소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결정을 따르지 않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어서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수용했다면 이 회장은 박 전 대통령 뇌물 사건으로 승계와 관련한 법적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이 회장으로서는 사법 리스크를 온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사내이사가 되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주총에 사내이사 선임안이 상정됐을 때 외국계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반대 세력을 조직해 공격할 가능성이 커서다. 삼성전자든 이 회장이든 괜히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내이사 선임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다. 삼성전자 이사회가 이 회장 승진을 결정한 배경은 책임경영이다. 현재 삼성을 제외하고 SK,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기업집단은 총수가 핵심 계열사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사회 참여 여부에 따라 법적 책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상속 문제가 일단락되며 장기간 이어진 재판의 의미도 과거보다 퇴색됐다.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유족은 지난해 상속세를 일부 납부했다. 이 회장은 고인으로부터 삼성생명 등 지분을 물려받아 지배력을 확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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