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업무 가운데 신뢰에 바탕한 책임이 전제되지 않을 때 금융은 그 존재 조건을 상실한다는 걸 깨닫게 되자 여의도 증권가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돈 이전에 신뢰를 먹고사는 곳이었다.
새해 들어 이런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 지난 12일 카카오페이증권 앱 내 접속 오류로 이용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주식을 매도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5일에는 미래에셋증권 일부 계좌에서 이미 매도한 물량이 잔고에 그대로 표기돼 해당 고객들이 기존 매도 주식을 또 다시 파는 사태가 벌어졌다. 불과 2주 간격으로 벌어진 일들이다.
무엇보다 취재 과정에서 증권사의 결여된 책임성을 체감했을 때 "금융=신뢰"라는 믿음이 깨졌다. 카카오페이증권은 사고 뒤 발표한 공식 입장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내부 서비스 오류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어떤 원인이 사고를 일으켰는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현재까지도 알 길이 없다.
카카오페이증권 공식 홈페이지에 유일하게 내선번호가 공개된 채용 담당 쪽으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회사 내 언론 담당 부서가 따로 없다는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직원 실수로 오류가 발생했다며 꼬리 자르기 같은 인상을 남겼다. 관계자에게 재차 해명을 듣고 해당 사이트를 뒤져봐도 문제 원인과 추후 경과에 대해 후련하게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자세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그러던 중 별안간 한 가지 소식이 들렸다. 이틀 전 KB국민카드 앱 'KB페이' 전산사고 뉴스였다. 국민카드 측은 사고 원인에 대해 설 연휴 이후 시스템 정기배치작업에 따른 데이터량 증가, 저녁 시간 결제 증가에 의한 서버 과부하 발생이라고 밝혔다.
뜻밖의 상세한 설명이 전자들과 대조를 이뤘다. 사과만큼 중요한 것은 누구든 수긍할 만한 책임 있는 태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 자세란 명확하고도 이해 가능한 원인 설명에서 출발한다는 점도 함께 깨달았다.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금융가 레토릭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다. 고객들이 진짜 듣고 싶은 말은 이런 사고가 왜 발생했는가, 어떤 방식으로 사태 재발을 막을 것인가,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하는 것들이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