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정부 "노조에 칼 빼들었다"…노동 개혁 전초전 돌입

고은서 인턴기자 2022-12-28 17:52:37
정부, '노조 회계공시시스템' 구축 지시 부패 방지·투명성 강화…美·英 따라 규제할까 "과도한 노조 때리기" vs "재정 투명성 강화해야" 양극화된 노동시장…이중구조 개선 필요성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조합 재정 투명성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노동조합 재정 투명화를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정부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노동 개혁’을 위한 선제 조치로 정부가 노조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를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8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열린 대통령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DART)’같은 '노조 회계공시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조 재정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올해 노조 재정의 투명성을 두고 끊임없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 4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한 지부장이 조합비 3억7000만원을 횡령해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 21일엔 10억원대 노동조합비를 횡령한 혐의로 진병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노조 재정에 대한 국민 불신은 날로 커졌다. 노조가 조합원들로부터 수천억원씩 걷은 조합비 예산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다며 ‘깜깜이 회계’란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노조가 대기업에게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투명성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양극화된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전국노동조합 조직 현황 보고에 따르면 전국노동조합 조직원은 2021년 기준 293만3000명이며 이 가운데 300인 이상 대규모 노동조합에 속해 있는 조합원 수가 260만명으로 88.8%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노조 가입자 10명 중 9명이 300인 이상 노동조합에 소속돼 있는 셈이다. 근본적으로 국내 노조가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업체 규모별 조직 현황을 봐도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46.3%로 집계됐다. 반면 △30인 이상 99인 이하 사업장 조직률은 1.6%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했다. 노조를 결성한 사업장이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과도하게 쏠렸음을 방증하는 수치다.
 
정부는 우선 회계감사원(감사위원) 관련 법·시행령을 개정해 노동 개혁의 첫 발을 뗀다. 노조 연합·상급단체 등에서 회계 감사위원은 규약에 따라 대의원 투표로 선출되지만 연 1회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예·결산을 승인하는 수준에 그친다. 공인회계사를 감사위원에 포함시킨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합원 중에서 뽑혀 전문성도 한계를 지닌다. 고용부는 감사위원 자격과 선출 방법을 시행령에 명시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한국노총이란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는 정부가 명분을 만들어 노조 자주권을 훼손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결정이 일부 사례를 앞세운 과도한 ‘노조 때리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노조는 매년 초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적법한 절차로 회계 감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잇따라 발생한 노조 부패와 비리에 따른 국민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법령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입장도 나온다. 특히 주요 선진국과 같이 노조 재정 규제 조치를 법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미국은 ‘노사정보 보고·공개법(LMRDA)’에 따라 노동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노조 회계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 영국은 연차 보고서를 통해 노조 재무를 조사하는 검사관인 노동부 인준관에게 제출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한편 노동부는 법 개정 전엔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우선적으로 노조가 자율적으로 재정의 투명성을 점검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할 전망이다. 노동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기업별 노동조합과 노총·산업별 노동조합(산별노조) 같은 연합단체 253곳을 대상으로 내년 1월 말까지 노동조합법상 갖춰야 하는 재정 운용 관련 서류를 비치할 수 있도록 자율 점검을 안내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