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글로벌 신약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고, 자국보호주의 아래 각국의 신약 개발 경쟁은 치열해졌다. 특히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은 바이오 분야의 자국 생산 경쟁력 강화 방침을 내세웠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혁신과 투자 등 발빠른 대처가 시급하다.
한국 제약바이오헬스산업은 최고 수준 의료기술 및 임상시험 인프라, 역동적인 제약바이오 생태계, 신약개발 R&D 역량 확보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낡은 규제가 성장을 가로막고 있고, 정부의 산업 육성 전략도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2022 이코노믹데일리 제약바이오포럼’은 'K-제약바이오산업 규제개혁과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백신과 위탁개발생산(CDMO)은 물론 원료의약품과 세포‧ 유전자 치료제 등 관련 글로벌 동향을 미리 짚어보고,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윤석열정부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 무산 가능성
윤석열정부는 지난 3월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며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제약바이오강국 실현을 위한 컨트롤 타워로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백신주권, 글로벌 허브 구축을 위한 국가 R&D 지원을 통해 제약바이오주권 확립 △제약바이오산업 핵심인재 양성 및 일자리 창출 생태계 조성을 통한 '국가경제 신성장, 제약바이오강국 실현' 등이다.
지난 5월에는 △바이오헬스 거버넌스 강화 △혁신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글로벌 메가펀드 조성 △제약바이오 핵심인력 양성, 바이오헬스 특화 규제 샌드박스 운영 △글로벌 바이오캠퍼스 조성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제약바이오산업 전반을 포괄하고 정부정책을 조율해야 할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는 진전이 없다. 지난 7월 정부부처 위원회를 재정비, 축소계획에 따라 사실상 위원회 설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는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는데,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선정한 분야에 제약바이오는 없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윤석열정부가 내세운 ‘바이오산업 육성’ 구호가 허울뿐인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제약바이오헬스산업은 혁신적인 경제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헬스케어, 생명과학, 바이오사이언스, IT 및 제조산업과 다방면으로 교차하고 있다. 기술발전과 의료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제약바이오헬스산업의 영역이 보건산업 및 첨단기술 기반 신산업으로 점차 확장하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국내 제약ㆍ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연구개발, 정책금융, 세제지원, 규제개선, 인력양성 등을 포괄하는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각 부처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업계 관계자는 “첨단 기술 발달로 제약바이오산업 덩치가 너무나 커졌기 때문에 1개 부처가 감당할 규모가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각 부처가 협의해 통합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K제약바이오 글로벌경쟁력 제고…원료의약품 공급망·글로벌진출 지원 시급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의 발 빠른 대응과 다양한 사업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조성하려는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내 원료의약품(API)은 대외 의존도가 높아 보호 무역 확산, 코로나19의 자국민 우선 정책 등으로 장벽이 높아질수록 글로벌 공급망의 수급은 고질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국내 원료의약품 자국화 정책으로 주요 품목별 단계적 자급화 추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인건비 등으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고 있는 중국과 인도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가 단기·중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료약 생산을 증가하기 위해 △국가 비축 물자에 원료 의약품을 확대 △국내 원료약을 사용해 생산된 약제 의약품에 대한 국가 조달시 쿼터제를 도입 △국산 원료약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일부 국가에 편중된 원료의약품 제조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원료의약품 수요자에 대한 협상력이 저하되고 있다”며 “정부는 국산 원료 활용시 의약품 가격을 우대하고, 친환경 공장 설비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세제와 투융자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 △전주기 규제서비스 강화(전주기 제품화전략지원단 운영과 정규조직화 등) △원료의약품 복수 규격 허용을 통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공정서 규격 포함한 원료의 관리 개선 등)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 합리적 개선(추가부담금 관련 약사법 문구 삭제 등) 등을 포함시켰다.
제약바이오업계도 규제개선 요구사항을 식약처에 전달했다. △해외에서 제한이 없는 치료용 신경정신약물의 의료목적 연구개발이 가능하도록 규제개선 △의약품 외용제에 대해선 주요 선진국들의 규제를 적용해 유전독성 자료 제출을 면제해줄 것 △최근 비대면 흐름을 감안한 디지털마케팅 등 의료기기 광고 심의 체계 개편과 신약개발 및 허가 관련 규정 교육 강화의 필요성 등이다.
식약처는 또 글로벌 통상 환경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목적으로 ‘글로벌식의약정책전략추진단’을 출범시켜 주요 수출국 제도·기준 분석 및 신속 진입 전략을 마련하는 등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조력하고 있다.정부는 ‘GIFT 프로그램’을 운영해 글로벌 혁신 의료제품을 신속하게 제품화해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GIFT는 글로벌 혁신 의료제품이 신속하게 제품화될 수 있도록 임상 개발 초기부터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규제 완화방안과 관련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혁신 의료기기는 허가 절차에 걸리는 기간을 기존 390일에서 80일로 줄여주기로 했다. 첨단 디지털 바이오 제품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네거티브 규제를 확대할 계획이다. 바이오헬스 산업 특성에 맞춘 규제 샌드박스도 신설한다.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데이터심의위원회를 법정 기구로 만드는 법제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의료데이터를 모은 건강정보 고속도로를 마련하고 2025년부터 바이오생산공정 인력을 양성하는 한국형 프로그램을 시작해 5년간 1만7000명을 육성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코로나 19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임시로 사용된 비대면 진료가 980만건에 이를 정도로 국민의 일상에 스며들었다”며 "의료법에 가로막힌 비대면 진료 규제가 해소될 경우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성장과 재편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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