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英美 어깃장에 암초 만난 항공 빅딜..."합병 배경 잘 설득해야"

문은주 기자 2022-11-17 17:54:24
영국 이어 미국도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승인 보류 합병시 해외 경쟁당국 승인 필수..."韓경쟁력 하락 우려도"
[이코노믹데일리]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심사에 제동이 걸렸다. 주요 경쟁당국인 영국과 미국이 잇따라 승인 보류 카드를 꺼내면서다. 글로벌 국가 우선주의가 확산하는 가운데 상반기 조선 빅딜이 무산된 데 이어 항공업계까지 암초를 만나면서 한국 산업 경쟁력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이어 미국도 '보류'...중국 승인 여부 미지수 

지난 9월만 해도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왔다. 임의 신고국가인 호주가 조건 없는 기업결합 승인 조치를 내린 것이다. 호주 국적사인 콴타스항공과 젯스타가 시드니 노선을 운항할 예정인 만큼 효과적인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는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당시 대한항공 측은 "호주 경쟁당국의 승인을 필두로 다른 미승인 경쟁당국의 승인 시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나머지 필수 신고국가인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과 임의 신고국가인 영국 등과 적극 협조해 조속한 시일 내에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필수 신고국가는 기업결합을 법적으로 승인하는 국가이고 임의 신고국가는 신고 후 허가하는 개념을 갖고 있는 국가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월부터 기업결합 신고를 진행한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터키, 대만, 베트남 경쟁당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다. 태국은 기업결합 사전심사 대상이 아님을 통보하기도 했다. 

임의 신고국가 중에서는 호주를 포함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부터 승인 결정을 받았다. 필리핀의 경우 신고 대상이 아니므로 절차를 종결한다는 의견을 접수했다. 

그러나 영국이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기업결합 승인을 유예하면서 두 항공사 간 합병 절차에 지연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사가 합병하면 소비자들의 항공권 가격이 상승하거나 서비스질 하락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만 해도 직항 노선을 제공했던 영국항공이 2020년 운항을 종료하면서 독과점 우려가 높다는 설명이다. 화물 시장 독점 우려도 내비쳤다.

여기다 미국 경쟁당국도 승인 여부 발표를 보류하기로 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16일 시간을 두고 기업결합 심사 관련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미주 노선이 많은 만큼 독과점 여부를 신중히 판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문제는 중국 경쟁당국이다. 최근 국가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과거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두고 시간을 끌다 인수합병(M&A)을 엎어버린 사례가 있어서다. 지난 2018년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시간을 끌다 끝내 계약을 무산시켰다. 한국 항공 빅딜에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국가 우선주의' 강화되는데...韓경쟁력 쇠퇴 우려 

통상 글로벌 기업이 합병할 경우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해외 경쟁당국이 한국 기업 간 합병에 시간을 끄는 건 항공 빅딜만은 아니다. 지난 1월에는 EU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을 최종 불승인하기로 하면서 최대 조선 빅딜이 사실상 무산됐다. 양사가 합병하면 유럽 선사들의 수요가 많은 대형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대형 LNG 운반선 건조 분야에서 세계 3대 기업 중 두 곳으로, 합산 시장 점유율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사의 기업결합이 성사되면 시장 점유율이 최소 60%를 넘어서면서 시장 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SK하이닉스도 2020년 인텔 낸드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하고 2년 만에 어렵게 인수를 완료했다.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에 시간이 걸리면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 허가 여부는 경쟁당국이 가진 고유 권한인 만큼 승인 여부를 예단하기가 쉽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특히 EU와 중국을 필두로 자국 산업 보호 장벽을 높이는 국가 우선주의가 확산하면서 한국 기업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2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지만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 이같은 조치는 유명무실해진다. 해외 경쟁당국의 입장에 따라 공정위의 입장 변화가 예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승인을 보류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대규모 적자로 인한 파산 위기를 막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합병의 필요성을 들어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한항공 보잉787-9 [사진=대한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