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LG전자엔 '도플갱어'가 있다?…창원 LG스마트파크, 혁신의 '등대'로

성상영 기자 2022-10-11 00:00:00
'韓 가전 메카' 경남 창원 LG스마트파크 가보니 로봇이 부품 적시에 공급하고 위험한 일 대신해 생산량 늘고 불량률 줄어…해외 사업장에 확산 기계가 일자리 뺏는다? "협력사까지 고용 늘어"

경남 창원 성산구 LG스마트파크(LG전자 창원공장) 전경[사진=LG전자]


[이코노믹데일리]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생산력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특이점이 있었다. 18세기 분업의 발견, 19세기 증기기관의 발명과 산업혁명, 20세기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포디즘(Fordism·포드식 생산체제)이 그랬다.

컨베이어 벨트 발명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제조업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았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자동화가 이뤄지고 데이터에 바탕을 둔 생산 관리가 속속 도입되며 '제조 지능화' 시대가 시작됐다.

경남 창원에 자리 잡은 LG전자 'LG스마트파크'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제조업 발전의 등대로 우뚝 서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제시한 세계경제포럼(WEF)은 LG스마트파크와 더불어 전 세계 103개 사업장을 '등대공장'으로 선정했다. 등대가 불을 밝혀 배가 다닐 길을 비추는 것처럼 등대공장이 첨단 기술을 통해 제조업의 미래를 이끈다는 뜻이다.

LG스마트파크는 지난 3월 국내 가전업계에서 처음으로 등대공장에 선정됐다. 국내에서 등대공장에 선정된 곳은 LG전자와 더불어 포스코 포항제철소, LS일렉트릭 청주공장 등 3곳뿐이다.

기자는 지난 6일 LG스마트파크를 직접 방문해 LG전자 창원공장이 '한국 가전의 메카(성지)'로 불리는 이유를 살펴봤다.

◆대량 생산 시대의 종말...지능형 공장의 시작

LG전자가 처음 창원에 터를 잡은 때는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직후인 1976년 11월이다. 당시 '금성사'라는 사명을 사용한 LG전자는 창원 1공장에서 냉장고와 에어컨을 생산했다. LG전자 창원공장은 몇십 년을 써도 고장이 안 나 질려서 바꾼다는 '골드스타' 가전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장도 노후되고 가전 시장 유행도 빠르게 전환됐다. 소량 품종을 대량 생산해 단가를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면 다양한 소비자 요구에 대응하고 새로운 시장 수요를 창출해야 했다. 같은 냉장고라도 판매 국가, 소비자 주거 형태 등에 따라 냉장실과 냉동실 위치나 문 여는 구조, 세부 사양이 달라졌다.

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냉장고 모델만 수십 가지에 이르면서 한 생산라인에서 여러 유형을 만드는 혼류 생산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제조 지능화 사업을 추진하기 이전에는 사양서에 맞춰 사람이 지게차로 부품을 공급하고 조립과 품질 검사까지 모두 도맡았다. 아무리 뛰어난 노동자라도 여러 제품이 뒤섞이다 보면 헷갈리기 일쑤다. 사람에 의한 오류인 '휴먼 에러'가 발생할 위험이 커졌다는 얘기다. 자칫 불량률은 높아지고 생산 효율성은 떨어지기 쉬운 여건이 만들어졌다.

LG전자는 스마트팩토리(지능형 공장)를 해법으로 선택했다. 대량 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맞춤 생산 체제로 바꾸기 위한 목적이다. LG전자는 2017년부터 지능형 공장 전환 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9월 1차로 냉장고와 정수기 등 3개 라인 가동에 들어갔다.
 

LG전자 직원들이 창원 LG스마트파크1 통합생산동에 구축된 디지털 트윈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사진=LG전자]


◆LG전자엔 미래에서 온 '도플갱어'가 있다(?)

김해 장유신도시에서 창원터널을 빠져나오니 창원 시가지가 펼쳐졌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창원대로를 경계로 왼쪽에 드넓은 공장 지대가 외지인을 압도했다. 마산 방향으로 가다 성산패총 쪽으로 길을 틀자 LG스마트파크가 나왔다.

LG스마트파크1(옛 1공장) 입구를 통과하면 20층짜리 통합 R&D(연구개발)센터가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공장 진입 전 보안을 위해 휴대전화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R&D센터 맞은편에서는 커다란 생산동을 납품 차량이 둘러싸고 있었다. 스마트파크1의 대지 면적은 25만6000㎡(약 7만8000평)로 축구장 넓이로 환산하면 35개에 이른다.

통합생산동 1층 로비로 들어서자 오른쪽에 대형 화면이 있었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구현한 가상의 생산라인과 함께 부품 이동, 재고, 설비 이상 유무, 생산 실적 등 각종 현황을 한눈에 보여줬다.

디지털 트윈은 말 그대로 실제 생산라인과 똑같은 생산라인을 가상 세계에 복제한 것이다. 이 쌍둥이 생산라인은 현실에 있는 생산라인보다 10분 앞서 돌아간다. 미래에서 온 도플갱어가 LG스마트파크에 사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비밀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에 있다고 했다. 주문량, 생산 일정, 부품 수량, 라인 가동 속도 등을 토대로 AI가 10분 뒤 상황을 미리 계산한다는 것이다. 쌍둥이 생산라인은 언제, 어느 공정에서, 어떤 부품이 더 필요하고 어떤 장애가 발생할지 알려준다.

LG전자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 기술을 도입한 뒤로 설비 고장에 따른 작업 중단 시간이 96% 감소했다.
 

LG스마트파크1 통합생산동 내부 천장에 설치된 고공 컨베이어가 냉장고 부품을 운반하고 있다.[사진=LG전자]


◆물류 로봇과 고공 컨베이어로 적재적소에 부품 공급

통합생산동은 컴퓨터에 의해 설비와 기계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정밀하게 움직였다. AI는 각 설비마다 부착된 수많은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30초마다 데이터를 수집·분석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통합생산동에서 하루에 수집하는 데이터 용량만 500기가바이트(GB)에 이른다. 이전 냉장고 생샌라인에서 만들어지는 하루 평균 데이터인 50메가바이트(MB)의 1만 배나 된다. LG전자는 LG유플러스와 협업해 LG스마트파크에 5세대(5G) 통신망을 구축해 각 설비가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게 했다.

각 공정마다 부품을 공급하는 일부터 여느 공장과는 달랐다. 통합생산동 내부에는 직육면체 몸체에 바퀴가 달린 물류 로봇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로봇은 부품이 보관된 곳까지 스스로 찾아가 목적지까지 정확히 부품을 배송했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부품이 필요한 곳을 미리 인지하면 물류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식이었다.

바닥 곳곳에는 녹색 선이 그려져 있었다. 로봇은 그 위에 부착된 QR코드를 읽어가며 길을 찾았다. 중간에 사람이나 물체로 길이 막히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정지했다. 그리고 사람이 길을 비켜줄 때까지 경보를 울렸다. 꽤나 시끄러웠지만 사람이 지게차로 부품을 운반할 때보다 훨씬 안전하다.

바닥에 물류 로봇이 있다면 천장과 기둥에는 수직, 수평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이른바 '고공 컨베이어'로 불리는 이것은 각 공정을 지나며 용접과 조립을 거친 제품을 실어 나른다. 물류 로봇은 최대 600kg까지 부품 상자를 들어올릴 수 있고, 고공 컨베이어는 최대 30kg까지 운송 가능하다.

제조업에서 부품을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것은 생산 효율성과 직결된다. LG스마트파크는 입체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갖춘 덕분에 낭비되는 시간과 공간을 크게 줄였다. 자동화 이전과 비교해 자재 공급 시간은 25%, 자재 보관·이동에 필요한 면적은 30% 각각 감소했다.
 

경남 창원 LG스마트파크1 통합생산동에서 로봇이 냉장고 문짝을 조립하고 있다.[사진=LG전자]


◆어렵고 위험한 일은 로봇이…'3D업종' 편견 깨뜨려

로봇은 사람이 꺼리는 작업도 대신했다. 용접과 냉장고 문짝을 몸체에 조립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하다(dangerous)는 제조업을 일컬어 '3D업종'이라고 하는데, 제조 지능화를 도입하면서 이러한 편견도 깨지는 모습이다.

LG전자는 용접 방식을 바꾸고 해당 공정을 자동화했다. 냉장고 내부에는 차가운 공기를 만들어내 이를 골고루 전달하는 컴프레서(압축기)와 응축기, 증발기 등 금속 재질 부품이 들어간다. 용접을 통해 이들을 하나로 이어 붙인다.

기존 용접은 연료와 산소를 연소해 발생시킨 불꽃으로 사람이 직접 금속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체에 해로운 가스가 발생한다. 또한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고, 실력이 좋은 작업자라도 오전과 오후의 품질이 달라졌다.

지금은 접합 부위에 고주파 전류를 흘려 열을 발생시키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유해 가스를 줄였다. 아울러 로봇이 용접을 하면서 일정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문짝을 다는 일도 로봇 몫이다. 냉장고 문짝 무게는 20kg나 되는데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들어 경첩에 위치를 맞추고 조립까지 했다. 자동화는 직원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켰다.

특히 무거운 물건을 들었다 놨다 반복해야 해 이 공정을 맡은 직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일이 워낙 힘든 탓에 직원들이 다른 공정으로 배치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로봇의 등장으로 LG스마트파크 통합생산동 직원들은 이전보다 안전하게 일하게 됐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했지만 일자리는 줄지 않았다. 직원들은 로봇과 설비를 관리하거나 품질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오히려 LG스마트파크 가동 이전과 비교해 창원지역 협력업체 고용이 15% 증가하는 부수 효과도 거뒀다.

◆등대공장 넘어 친환경 공장 발돋움

LG스마트파크는 제조 지능화 사업이 마무리되는 2025년에 맞춰 친환경 공장으로 또 한 번 변신을 꾀한다.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 1만 장을 설치해 태양광 발전소를 구축하고, 연간 사용 전력의 10% 이상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미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심야에 전력을 저장했다가 주간에 사용하고, 창원 관내 소각장의 폐열을 재활용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있다.

한편 LG전자는 LG스마트파크를 본보기 삼아 여러 해외 사업장으로 제조 지능화를 확산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