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추진 중이다. 산은은 한진칼이 발행하는 신주(5000억원)와 교환사채(EB, 3000억원)을 인수하고 한진칼은 조달한 자금을 자금사정이 빠듯한 대한항공에 우선 대여한다.
대한항공은 2조5000억원(한진칼 할당 73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다. 모회사인 한진칼은 대한항공에 대여한 자금을 신주로 받아 상계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이 유증을 통해 모집한 자금은 아시아나항공 신주(1조5000억원)와 영구 전환사채(CB, 3000억원) 인수에 쓰인다. 모든 거래가 종료되면 ‘한진칼-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은은 두 개의 국적 항공사를 한 지붕 아래에 두게 되면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문제는 자금지원 형태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각 호를 보면 산은이 제3자 배정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은 3호로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긴급한 자금조달을 위하여 국내외 금융기관 또는 기관투자자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다.
여기 핵심은 ‘긴급’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글로벌 항공업 경쟁심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구조조정과 통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진칼이 ‘긴급’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GI 측 역시 “자금이 필요한 곳은 한진칼이 아닌 대한항공”이라며 산은과 한진그룹의 결정을 비판했다.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한 KCGI가 한진칼의 정관 위반 내용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결정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시장은 우선협상대상자였던 HDC현대산업개발이 사실상 인수를 포기한 시점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실사 요구 혹은 이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직접 회동을 한 시기로 보고 있다.
이 때부터 산은과 한진그룹이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고 해도 아시아나항공 실사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는지 의문이다.
한진칼이 지난 16일 공시한 ‘한국산업은행 등과의 투자합의서 체결의 건’에 따르면 한진칼은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회의원 등을 선임해야 한다. 주요경영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과 동의권도 준수해야 한다.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등 경영 관련 채권단 감시를 받게 된다. 이중 중요 조항을 위반하면 한진칼은 5000억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산은은 한진그룹 경영상황을 철저히 감시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은 시장 비판을 의식한 ‘보여주기’ 혹은 ‘독소조항’에 불과하다. ‘無실사’는 경영진의 배임 행위도 될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논란이 되는 근본 배경에는 한진칼을 둘러싼 조원태 회장 측과 3자연합(KCGI, 반도건설, 조현아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 분쟁이 있다. 산업은행이 제3자 배정으로 한진칼 신주를 취득하고 조원태 회장 측 우호세력이 되면 지분율 기준 승기를 잡고 있는 주주연합의 힘이 약해진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 실패를 만회하고 조원태 회장은 경영권을 확보하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IB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한진칼에 신주 인수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한진칼의 대한항공에 대한 지배력 유지(책임경영)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논란을 최소화하려면 일반공모 후 실권주를 산은에 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정관 중 ‘긴급’에 대한 내용은 각 주체별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산은과 한진그룹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진칼 관계자는 “산은 지원 자금의 최종 목적은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이라며 “단순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경영 전반 감시 체계를 통한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도 필요해 산은이 한진칼 주요주주로 등극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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