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도 막지 못한 총수 회동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던 이달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대표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평상시에도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총수들이 강화된 거리두기 속에서도 비공식 회동에 나선 것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들 4대그룹 총수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올해 초 대한상공회의소 신년회 이후 8개월 만이다.
재계 관계자는 “하반기 경제전망이 악화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이 힘을 모으자는 얘기도 나눴다고 한다”고 전했다.
올 상반기에도 4대 그룹 총수들은 정의선 부회장을 중심으로 차례차례 회동을 가져 화제가 됐다. 상반기 내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졌지만 이보다 우선순위에 오른 것은 협력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정의선 부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5월 삼성SDI 천안 사업장에서 만난 데 이어 구광모 회장과 최태원 회장도 각각 6월과 7월 정 부회장을 공식 초대해 회동을 가졌다.
특히 재계 1, 2위 그룹을 이끄는 이 부회장과 정 부회장이 사업 목적으로 만난 것은 처음이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두 총수가 만난 목적은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현황을 공유하고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아직 공식적인 사업협력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 도요타자동차-파나소닉 연합에 이어 삼성-현대차 사업협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정 부회장은 5월에 이어 7월 다시 한 번 이 부회장을 만나 논의를 이어간 바 있다.
◆“AI, 개별 기업 수준으론 안 된다”…필사적 결합
배터리 분야에서 한 차례 협력을 모색한 이들 그룹은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카카오 등 각 영역 1위 기업들이 AI 협력을 위해 손을 잡은 데 맞서 KT·LG전자·LG유플러스 등도 ‘AI 원팀’으로 뭉쳤다.
단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플랫폼 수준으로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결코 선두주자로 올라설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SK텔레콤은 “삼성전자와 초협력을 하지 않으면 두 회사 모두 플레이어가 아닌 사용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기술적인 부분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맞추기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자 한다”고 협력 취지를 밝혔다.
후발 연합체인 AI원팀은 올 초부터 분주하게 세를 불려가고 있다. KT와 LG 외에도 현대중공업, 동원그룹, 한국투자증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양대학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산학연에 걸쳐 연합군이 형성됐다. 여러 산업군이 한 데 모인 만큼 정보통신기술(ICT), 제조, 로봇, 스마트가전, 스마트선박, 물류, 식품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AI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위기 타파 위한 협력에 노사가 따로 없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위기에 노조와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매년 임금협상 때마다 파업이 반복되는 강성노조였다. 하지만 올해 파업 없이 임단협에 합의했다. 정 부회장이 준비하는 미래 자동차산업 변화에 노사가 힘을 합친 것이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던 삼성도 올해 기조를 바꿨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더"이상 무노조경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지난 7월 ‘울산CLX 행복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울산CLX 행복협의회는 현장 구성원이 직접 참여해 행복을 만들어 가는 조직이다. 최태원 회장의 ‘행복경영’ 의지에 노조가 화답한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8월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을 비상임 자문위원으로 선임했다. 대기업으로 향한 첫 진보정당 출신 자문위원이다. 추 위원의 LG행은 ㈜LG 최고 경영자 층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추 위원을 선임한 것은 결국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노사간 원만한 협조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추 위원은 피감기관에 취업했다는 이해충돌 문제로 인해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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