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지난해 12월 5일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각 관계사(상장사 9개, 비상장사 7개) 이사회를 통해 2020년 임원인사와 조직 개편 사항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핵심 계열사 수장은 모두 유임되면서 안정을 추구했다는 평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결정을 내린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일부 위원장과 참여구성원이 바뀌면서 그룹 전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지난 2013년 SK하이닉스 인수 직후 그 모습을 본격 전면에 드러냈다. 외형은 물론 질적 성장을 목표에 두면서 경영체제 혁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그룹은 통상 총수일가 혹은 주요 경영진에게 힘이 쏠린다. 의사 결정 권한이 한 곳에 집중되면서 특정 현안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이런 문제를 방지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서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그룹 전체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종·횡 ‘크로스체크’…융복합 시대 경영전략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전략위원회, 에너지·화학위원회, ICT위원회, 글로벌성장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사회적가치위원회 등 총 7개 위원회로 구성된다. 지난해 인사에서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한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유정준 SKE&S 사장이 에너지·화학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새로 선임됐다. 김준 사장이 활동했던 커뮤니케이션위원장에는 장동현 SK㈜ 대표이사 사장이 선임됐다.
이밖에도 SK㈜ C&C 사업부문 박성하 신임 대표이사가 협의회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차규탁 SK루브리컨츠 신임 대표이사, 이용욱 SK머티리얼즈 신임 대표이사도 각각 협의회에 얼굴을 내비쳤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회별 소속 계열사를 보면 ‘명확한 구분’은 없다. 예를 들면 SK하이닉스는 전략위원회, ICT위원회, 사회적가치위원회 등에 속해있다. SK이노베이션도 전략위원회, 에너지·화학위원회, 커뮤니케니션위원회 등 한 곳에 집중돼 있지 않다.
융복합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종업종간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탓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혹은 ICT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요한 사업부문을 중심으로 재편된 셈이다. ICT와 배터리 부문도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협의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조율하게 된다. SK그룹이 경영전략 슬로건으로 ’따로 또 같이’를 외치는 이유다.
수펙스협의회는 2019년 9월 말 기준 5개 계열사 소속 7명 사내이사와 26명 미등기임원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5개 상장 회원사 전체 사내이사가 15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협의회가 그룹 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인사로 구성원 수가 늘었다는 점은 현재보다 향후 그룹 방향과 발전에 있어서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유독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생존’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있다. 계열사별 벽이 존재하는 경직된 사고 방식이 아닌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 핵심은 단순 의사결정이 아닌 그룹 생존과 성장을 위한 치열한 고민을 하는 주체라 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사회적 문제 해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개념이 수펙스추구협의회가 핵심으로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라며 “모든 지식과 경험·노하우 등을 공유해 보다 나은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면 생존은 물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융복합 시대로 접어든 만큼 기업별로 역할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부문별로 특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향후 SK그룹 계열사별 많은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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