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 영상톡]"한국서 추상·미니멀리즘·개념미술의 성장" 진동:한국과 미국 사이..서울대미술관

홍준성 기자 2018-07-09 10:11:51
-전성우·최욱경·임충섭·노상균·마종일·김진아·강영민·한경우 작가 특별전 9월 16일까지 -서울대미술관-미네소타 미술대학,국제 교류전 60주년 기념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도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분다는 서울대미술관 앞에 칼날 같은 대나무들이 서 있다. 형형색색 2000여 개의 대나무는 마치 레이저 광선이 목표를 향해 날아오르듯 파괴적이고 난잡하다. 대나무는 더는 동양적 정서를 대변하지 않고 단지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한 오브제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미국 유학길에 나섰던 마종일 작가의 작품 '월요일 아침에 들을 수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1960년대 이후 주류로 떠오른 미국의 현대미술을 받아들여 변형시키고, 새롭게 발전시키고, 결국에는 선도해 나간다.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를 8명의 작가를 통해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태서 서울대미술관 학예사가 전성우 작가의 '캘리포니아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미술관은 미네소타 미술대학과의 국제 교류전 60주년을 맞이해 기획전 '진동(Oscillation): 한국과 미국 사이'를 9월 16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미국으로 유학을 하였던 전성우, 최욱경, 임충섭, 노상균, 마종일, 김진아, 강영민, 한경우 등 8명 작가의 회화·조각·설치 등 총 65점이 전시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정 서울대미술관 학예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1958년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 미술대학과의 교류전은 공식적인 나라 간의 최초의 국제교류전이라는 것과 우리나라에 미국의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며 "작가들이 미국행을 선택하게 된 맥락과 그 이후로 급속히 활발해진 한국과 미국 사이의 미술교류 현장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만한 기회로 삼고자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마종일 작가가 서울대미술관서 '월요일 아침에 들를 수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8명의 작가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하여 1950년대 이후부터 도미의 순서에 따라서 선정됐다.

1950년대 첫 유학생이었던 전성우 작가를 비롯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혼란스러웠던 상황과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한 상황 속에 미국행을 선택했던 최욱경 작가와 임충섭 작가를 선정했다.

1980~90년대는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미국으로 자유롭게 이주가 시작됐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노상균, 마종일, 김진아 작가를 선정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젊은 작가인 강명민 작가와 한경우 작가는 2000년 이후에 유학한 작가로 선정하여 전시를 구성했다.

[김태서 서울대미술관 학예사가 한경우 작가의 '플라스틱로샤 믹스'를 설명하고 있다. ]


올해 2월에 취임한 윤동천 서울대미술관 관장은 "작가들이 당시에 활동했던 전성기 작품보다는 초창기의 미국에 있을 때의 작품들을 선보이려고 애썼다" 며 "이렇게 그 당시의 (미국) 영향을 받고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취지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김태서 서울대미술관 학예사는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정성우, 최욱경, 임춘석 작가의 경우는 미국 유학 당시에 접하게 된 국제적인 미술 양식에 어떻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부여하느냐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갔던 노상균, 마종일, 김진아 작가는 2세대로 볼 수 있다" 며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현대미술의 틀 안에서 다루는 측면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노상균 작가가 불상을 시퀸(suquin·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조각을 붙인 것)으로 만든다고 해서 아시아적 정체성의 표출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측면들이 있고, 마종일 작가의 경우도 대나무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물질적 측면에서 장벽들이 서로 엮이면서 만들어 내는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하는 측면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김 학예사는 끝으로 "한경우, 강현민 작가의 경우 한국 작가라는 설명을 따로 붙이지 않는다면 작품들이 굳이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없다" 며 "미국이라는 창을 통해 현대미술을 받아들이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동시대 미술을 더는 흡수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움직임과 발맞춰 나가는 동시대 미술의 일원으로 한국 미술이 성장하게 되는 과정이 이번 전시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미술관에 전시된 최욱경 작가의 '무제']


▶최욱경 작가, 구상적 단서를 추상적으로 표현

전시장 입구에는 미국의 추상주의 표현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최욱경 작가의 작품들이 걸렸다.
한국에서 단색 추상화가 부흥하던 1960년 미국으로 유학을 하러 간 최욱경 작가는 강렬한 색채 필치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유학 초기부터 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본격적으로 추상표현기법들 도입하기 시작했다.

전시된 '무제(1965)' 작품에는 넓은 색면으로 화면을 나눈 이후에 그 사이사이에 작은 터치나 색면들이 개입하면서 화면의 율동감이나 긴장감을 조성하는 작업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작품은 완전히 추상적이기보다는 일종의 구상적 단서를 들여와서 추상적 표현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화면에 형상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림에서 붉은 색면과 안에 색조합을 보면 여인의 뒷모습 같은 사람의 형상을 연상시킬 수 있는 형상 또한 상당히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미술관에 전시된 최욱경 작가의 '실험 제1번']


최욱경 작가는 미국의 추상표현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유학을 했던 60년대 당시에는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끝물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추상성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구상성을 어떻게 회화에 복귀시킬 것인가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잡지나 광고 이미지를 화면 위에 조각을 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캔버스와 실제 사물을 결합하는 '콤바인 페인팅'이 시도되고 있었다.

최욱경 작가도 그러한 콤바인 페인팅으로부터 상당히 자극을 받아서 잡지나 광고로부터 얻어낸 이미지들을 꼴라주(캔버스에 붙이는 작업)하여 '실험 제1번'과 '실험 제2번' 작품을 제작했다.

[서울대미술관에 전시된 전성우 작가의 '붉은 날개']


▶전성우 작가, 추상과 구상의 절충

전시장 안쪽에 들어서니 전성우 작가의 '캘리포니아 풍경' 작품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전성우 작가가 유학했던 캘리포니아 대학 주변의 풍광들을 그린 것인데, 풍경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 작품을 보면 풍경화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 전성우 작가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추상회화의 방식을 접하고, 그것을 자신이 전통적으로 교육받은 구상회화를 추상적으로 다시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탄생했다.

액자로 걸려있는 작품 '붉은 날개'는 리도그래프(석판화) 작품인데, 이 작품도 역시 구상적인 대상을 추상적인 표현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서울대미술관에 설치된 전성우 작가의 '시의 만다라']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8월 만다라', '봄 만다라', '시의 만다라', '공간 만다라 No.1' 등 전성우 작가를 대변하는 '만다라 시리즈'가 전시돼 있다.

'만다라 시리즈' 또한 추상과 구상의 절충을 통해서 나오게 됐다. 작품은 일종의 색면 추상과 같은 추상적인 표현을 보여주고 구상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커다란 원의 표현이 보인다.

따라서 모든 면이 추상화되어있다기보다는 일종의 구상적 모티프(motif:표현 ·창작의 동기가 되는 작가의 내부충동)를 가져와서 추상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전성우 작가는 추상화의 제작방식을 어떻게 한국적인 요소들과 결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던 작가이다.

'만다라 시리즈' 또한 색대비가 강한 와중에서 마치 수묵화를 제작하는 것처럼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놓고 물감을 뿌려서 스며들게 하거나, 서로 겹치고 번지게 함으로써 일종의 수묵화적 기법을 통해서 제작된 색면 추상 작품이다.

전성우 작가는 회고록을 통해 "수업에 들어가 봤더니 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데, 그게 그림인 것 같기도 하고 그림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데 뭔가 완성이 돼서 나중에 봤더니 그림이라고 하더라 한참 후에 생각해보니 그게 추상미술품이었던 같다"고 밝혔다.

[서울대미술관에 전시된 임충섭 작가의 '지각풍경']


▶임충섭 작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접목

임충섭 작가는 유학 당시에 미국에서 보았던 다양한 미술 사조들을 작품세계로 끌어와서 작품 제작방식 혹은 형식적 특징들을 사용하여 과거 한국에서 겪었던 기억들을 환기하는 매개체로써 활용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있는 '빛-회전', '지각풍경' 등의 작품은 도시와 교외 사이를 오가면서 또는 한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면서 발견한 오브제들을 조합해서 개인의 향수, 기억들을 환기하는 작품들이다.

재료의 물질적 특성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는 미국의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고, 주어온 오브제나 혹은 제작한 물체들을 설치 적으로 배치를 해 놓은 것을 보면 개념 미술적인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미술관에 전시된 노상균 작가의 '경배자를 위하여']


▶노상균 작가, 시퀸의 강력한 물성이 착각을 일으킨다

노상균 작가의 '경배자를 위하여'라는 작품은 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조각을 붙인 시퀸(suquin)이 불상을 감싸고 있다.
종교적 상징물로서 엄숙함의 대상인 불상을 시퀸으로 돌돌 말아 놓음으로써 굉장히 강한 물성이 작용한다.

시퀸은 반짝이는 자체가 매우 싸구려 느낌이 나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불상이 빽빽하게 시퀸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 그것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느낌이라든가 혹은 정신성을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동시에 주고 있다.

노상균 작가는 이렇게 시퀸이라는 재료를 통해서 기존에 알고 있던 회화에 대한 시각적 정보를 왜곡시킨다.

[서울대미술관에 전시된 노상균 작가의 '두개의 골']


이러한 왜곡은 전시된 작품인 '별자리7'와 '두개의 골'에 잘 나타나 있다.

작품들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시퀸 때문에 굉장히 입체적으로 보인다. 시퀸이 쌓여서 올라오다가 마치 움푹 파인 듯이 보이는 시각적인 착시 현상을 보여준다. 시퀸을 어느 방향으로 붙이느냐에 따라서 그림자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작품은 물성이 드러나면서 미니멀리즘의 특성이 있고 마치 단색조 회화 같은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강렬한 튀어나오고 들어가는 물성을 시퀸 자체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노상균 작가가 시퀸을 선택한 이유는 유년 시절에 낚시하다가 물에 빠져서 죽을뻔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시퀸의 반짝거림이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노상균 작가는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확장되고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지와 같은 측면들을 탐구하면서, 시퀸은 단순히 유전 시절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시퀸 자체가 주는 단결한 물성이 그의 주요 테마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미술관에 설치된 한경우 작가의 '스타패션셔츠' ]


▶한경우 작가, 시각적인 한계를 지적하다.

한경우 작가의 '스타패션셔츠' 작품에서는 미국 성조기가 화면에 투사되고 있다.

관람자는 카메라와 오브제 사이를 지나가는 순간 화면 안에 고정된 이미지처럼 보였던 성조기가 여러 오브제가 만들어낸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성조기라고 여겼던 화면은 어지럽게 놓여 있는 가구, 의상 등 오브제를 어느 한 방향에서 촬영했을 때 나타나는 순간적인 현상이다.

한경우 작가는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하나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그 바라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즉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매우 작은 측면 혹은 일종의 허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서울대미술관에 설치된 한경우 작가의 '화이트노이즈' ]


'화이트노이즈' 작품에서는 어떤 매체를 통해서 보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흑백의 강한, 매우 두꺼운 마띠에르(재료의 질감)가 표현된 유화 추상작품이 있고, 그 옆에는 이 추상작품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브라운관 TV가 놓여있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작품 앞에 다가가면 구형 브라운관 TV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강한 마띠에르를 가진 추상회화 작품이 구식 브라운관 TV의 작은 화면 위에 비치게 되면, 관람객은 매체의 특성에 의해서 작품이 아닌 고장 난 TV의 화이트 노이즈처럼 인식을 하게 된다.

'스타패션셔츠'가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읽는 방식을 제한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은 '화이트노이즈'는 그 이미지가 어떤 매체에 따라서 제시가 됨에 따라서 우리의 인식이 또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좌우 대칭인 '플라스틱로샤 믹스' 작품을 볼 때도 관람객은 당연히 심리 테스트의 이미지인 '로르샤흐 테스트'(Rorschach test:좌우 대칭인 그림을 보고 평가하는 인격진단검사)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

'플라스틱로샤 믹스'는 단순히 색깔 비닐봉지들을 꾸긴 다음에 조합해서 데칼코마니(반으로 접었다 펴서 똑같은 무늬를 복사하는 것) 형식으로 좌우대칭을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제시됨에 따라서 그 이미지를 잘못 읽거나 다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대미술관에 설치된 한경우 작가의 'Senseless Senses']


'Senseless Senses'는 당구대에서 당구공이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해서 LCD 모니터에 투영한 작품이다.

관람자가 공의 움직임을 관찰해보면 평면 위에서의 물리적 법칙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공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관람자는 LED 모니터의 위치와 상관없이 평면 위에 놓인 당구대에서 당구공이 움직이리라 생각을 하지만, 작품은 LED 모니터의 위치에 맞게 당구대를 기울인 것이다. LED 모니터를 세워 놨다면, 당구대를 세워서 당구공을 움직인 것이다.
관람자는 당구대가 수평으로 놓여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당구공의 움직임이 굉장히 이상한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미술관서 상영 중인 김진아 작가의 '서울의 얼굴']


▶김진아 작가가 회화를 떠나 영화감독이 된 이유

3층 전시장을 지나 2층으로 내려오면 김진아 작가의 장편영화 '서울의 얼굴'이 상영되고 있다.
'서울의 얼굴'은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부터 2009년까지 김진아 작가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찍은 서울의 모습을 주제별로 나눠서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한 장편 영화이다.

김진하 작가는 서울 토박이로서 20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떠나서 점차 한국을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서울의 얼굴'에서 김진아 작가는 토박이와 이방인으로 관찰자의 시선이 자꾸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서울의 모습은 내국인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개발이 덜 된 전형적인 제3 세계 국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역사적 현장이나 한국 고유의 문화를 표현한 부분에서는 결코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표현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한때 뒤섞이게 된다.

김진아 작가는 회화를 전공 했지만, 회화가 요구하는 특정 기술이 너무나 민주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 비디오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비디오 작업이 가장 민주적인 제작 방식이라는 생각에서 진로를 바꿔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미술관에 설치된 강영민 작가의 '죠지(George)']


▶강영민 작가, 미국 문화의 환상을 깨다

강영민 작가는 미군 부대 근처에 살았다. 그래서 집에 미군 물건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미국 문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알고 있었던 미국과 실제로 가서 느끼는 미국은 매우 달랐다. 그의 작품은 인쇄 매체를 통해 미국 문화와 사회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주를 이룬다.

'1960년대로 가기' 작품은 미국의 60년대 어느 고등학교 졸업 앨범의 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서 집어넣었다.

'죠지(George)' 작품은 죠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의 홍보 사진 140여 장을 모아 조각조각 잘라서 사람 하나의 얼굴 세트를 만들었다. 자유 세계의 리더이면서도 전쟁광이라는 오명의 그의 초상을 흩트리고 평면화했다.

[서울대미술관에 설치된 강영민 작가의 '에어로다이나믹 스킨']


강 작가의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은 '에어로다이나믹 스킨'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작품은 포르노 잡지의 나체 사진을 잘라서 해골 도상을 만들어 냈다. 작품은 여자의 얼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많은 나체 사진이 분해되고 다시 재조합해서 마치 악마의 형상을 보는 듯 흥미롭다.

거대한 회오리 모양의 '토네이도' 작품도 눈에 띈다. 서울 공덕동에 있는 빌딩 사진들을 해체 시켜 건축 현장에서 사용하는 비계와 연결하여 급속한 도시 건설의 비판적인 측면을 부각했다.

[마종일 작가가 서울대미술관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마종일 작가, 한국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3차원 그림으로 그려내

서울대미술관 앞에 설치된 마종일 작가의 대형 작품 '월요일 아침에 들를 수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는 2000여 개의 형형색색 대나무가 '공중에 떠 있는 3차원적 그림'을 연출한다.

대나무를 다양한 길이로 잘라 그 조각들을 꼬거나 모아서 마치 씨실과 날실이 엮이듯이 공간을 채워나간다.

그의 작품은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암시하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현상들, 정치적인 대립들 등 앞으로 진행해 나갈 복잡한 양상을 대변한다.

형형색색의 대나무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치 독성을 가진 곤충이나 생물들이 보이는 화려한 자태를 보이듯 약간 과장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