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은 소리 조각가 김기철(49)의 개인전 '주기의 깊이(The Depth of Cycle)를 5월 19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층 2점, 2층 5점, 3층 1점 등 총 8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김소라 OCI미술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 주제는 '주기의 깊이'로 소리가 퍼져나가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며 "김기철 작가는 해외 미술관 전시를 많이 했는데 국내에서 개인전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아 이번에 대규모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1층에 들어서니 대표 작품인 '마음'이 보인다.
이 작품은 중앙에 마이크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마음이라고 쓴 종이판이 올라와 있다. 소리를 움직임으로 바꾸는 장치로,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내면 종이판이 쓰러졌다가 다시 올라온다.
작가는 20년 넘게 소리를 다루다 보니 '소리는 마음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품에서 소리는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주체가 되기도 한다.
또한 소리의 강도에 따라서 마음은 빠르게 쓰러지기도 하고 천천히 쓰러지기도 한다. 즉 사람마다 소리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재료조차도 어디선가 쓰고 버려진 폐자재를 사용했다. 이는 마음이 새것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형 안에서 인형이 계속 나오는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는 소리와 닮았다.
작품 '마트료시카'는 중앙에 스피커가 놓여있고, 그 주위를 소리가 퍼져 나가는 형상의 파장이 8겹 둘러쌓고 있다.
소리 구조가 작은 것에서 점점 커져 나가는 확산의 구조로 되어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소리를 상상력으로 시각화해 만든 작품이다.
다만 나무로 원형의 소리 파장을 만들기 어려워 사각형으로 표현했다.
2층에 올라가니 벽면을 따라 기다란 레일이 보이고 당구공 2개가 놓여있다.
'In&Out'이란 이 작품은 소리를 시간으로 바꾼다. 당구공을 레일에 놓으면 전시장 벽면을 타고 흐르다가 약 1분 15초 뒤에 다시 되돌아온다.
당구공은 레일을 타고 흐르면서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고 경사면의 각도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움직인다.
이는 공부할 때의 시간과 놀 때의 시간이 다르듯 사람마다 흐르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계'작품에서는 48개의 종이 인형이 처음에는 동시에 회전한다. 하지만 회전속도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어떤 거는 빨리 멈추고 어떤 거는 천천히 멈춘다.
저마다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시간은 단순하게 표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원래 60개의 종이 인형을 구상했지만 공간의 제약으로 48개로 작업했다.
서양에서는 시간을 흘러가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동양의 시간은 60년을 기준으로 순환한다. 그것을 '육십갑자(六十甲子)'라고 한다. 작가는 60이라는 숫자가 시간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여겼다.
벚꽃은 떨어지면서 어떤 소리를 낼까?
작품 '초속 5cm라 들었다'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의미한다.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이 내는 소리를 물속에서 유영하는 큐빅 조각으로 표현했다.
손톱에 붙이는 알록달록한 손톱 큐빅은 물속에서 유영하며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 가라앉는 속도를 초속 5cm로 최대한 맞췄다.
진시황 병마용이 중앙에 서 있고 양쪽에 스피커가 놓여있는 '불로불사'작품은 소리를 생(生)의 주기를 연결했다.
스피커에서는 가청 주파수(16~20,000㎐) 중 20,000㎐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
이 소리는 청소년이나 대학생까지는 들을 수 있지만, 더 나이 먹은 사람은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설정이다.
스피커에서는 "혹시 좀 전에 발생한 파장의 소리를 듣지 못하셨다면 당신은 이제 늙은 겁니다"라는 기분 나쁜 소리가 흘러나온다.
파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불로불사'를 조금이라도 더 꿈꿀 수 있다.
'소리 보기-비'작품은 낚싯줄에 추를 매달아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소리를 볼 수 있으면 내가 삶은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작업했다고 한다.
지난 1995년 초기작은 낚싯줄의 끝에 빗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매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것이 식상하고 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소리를 봐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에 이번에는 시각적으로만 표현했다.
'하드밥-아홉 수'는 재즈의 한 종류인 하드밥이 한창 유행하던 1959년을 재현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8년에서 1959년을 빼면 59년이 나온다. 60년 주기로 육십갑자가 회귀하니 올해가 아홉수의 해인 셈이다.
이 작품은 알텍604B라는 스피커 2개와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의자로 구성됐다.
스피커는 1959년 산을 구하기 어려워 1949년을 사용했단다.
의자에 앉으면 공간이 고풍스러운 소리로 가득 차 충만함을 느낀다.
Copyright © 이코노믹데일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