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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너진 법치의 장벽, 그리고 국민의 배신감 

2025-12-16 10:05:09
[사진=게티이미지]

한때 대한민국 법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인물이 급기야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권력 독점을 획책한 친위 쿠데타라는 충격적인 의혹의 중심에 섰습니다.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영구 집권을 도모하기 위해 ‘비상계엄’ 선포라는 극단적 발상을 실행에 옮겼다는 작금의 사태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과 충격을 넘어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권력의 최전선에서 법의 칼날을 휘두르던 인물이 이제 그 자신이 가장 근본적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 모순적 상황은 우리 사회의 인물 평가 기준과 정치적 선택의 과정을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만드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그가 검찰총장 시절 내뱉었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한 마디는 당시 만연했던 정권의 사유화와 권력 남용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국민은 그 외침에서 원칙과 정의가 살아 숨 쉬는 공정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읽었고 그를 권력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지도자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실상은 어떻습니까? 법치를 수호하겠다던 강직함은 권력 독점을 위한 잔혹한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조직에 대한 충성은 개인의 사적인 야망과 영달을 위한 가면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수많은 국민이 그에게 기대를 걸고 투표했던 배경에는 그의 ‘권력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그를 통해 부패하고 낡은 정치 질서를 청산하고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소망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지지 여부를 떠나 ‘법과 원칙’이라는 공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 투영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취임 이후 보여준 행보와 이번 친위 쿠데타 의혹은 국민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입니다. 국민이 투표를 통해 위임한 공적 권력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만행사되어야 하는 신성한 책임입니다. 이를 오직 자신의 영구 집권과 반대 세력 제거라는 사적이고 비민주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 했다는 사실은 국민 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이자 기만입니다.

정치철학자들은 권력이 어떻게 부패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해왔습니다. 특히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법 위에 두려 할 때 민주주의는 가장 큰 위협에 직면합니다. 

우리는 이 인물에게서 법의 집행자로서의 기술적인 능력은 보았으나 민주적 지도자로서의 도덕적 자질과 헌법 수호 의지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법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법을 가장 잔인하게 파괴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은 더욱 무겁습니다.

이런 사태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도자의 외형적인 강직함이나 화려한 구호에만 현혹되어 그 권력의 뒤편에 숨겨진 개인의 병적인 야심과 통제되지 않는 집착을 간과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지혜와 정의를 갖추지 못한 통치자가 권력을 쥐게 될 경우 결국 ‘폭군’(Tyrant)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폭군은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법과 도덕을 무시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존재입니다. 

법치를 수호한다던 인물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제거 대상’으로 규정하고 헌법적 비상 수단인 계엄을 ‘쿠데타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혹은 그가 이미 민주적 지도자가 아닌 폭군의 길을 선택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로드 액턴(Lord Acton)의 명언,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이 상황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격언입니다. 검찰총장 시절,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사정 권력을 쥐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정 전반을 통제하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권력에 저항했던 과거가 그의 도덕적 방패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권력을 쥐자마자 가장 먼저 무너뜨린 것은 바로 그 자신이 옹호했던 '원칙'이었습니다.

결국 이 사태는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속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한때 정의의 사도처럼 보였던 인물이 권력을 잡자마자 가장 부패하고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는 과정은 지도자를 선택할 때 그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격과 절제력'을 얼마나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행태는 일시적인 실수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 원칙을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우리는 이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국민은 단순히 ‘사이다’ 같은 발언이나 ‘권력에 저항하는’ 퍼포먼스에 현혹되어 지도자를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평가할 때 집중해야 할 것은 일시적인 구호가 아니라 일관된 삶의 태도, 공익에 헌신하는 진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목숨처럼 존중하는 굳건한 신념입니다.

법치를 무너뜨리고 권력 독점을 꾀했던 이 인물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물론 공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기본 양식마저 상실했음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독재자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려는 국민의 끊임없는 의지와 감시 속에서만 유지됩니다.

다시는 이런 겉과 속이 다른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고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 한 인물이 국가 지도자로 선출되거나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나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민은 배신당한 기억을 잊지 않고 다음 선택에서는 '원칙과 상식'을 배반한 자들에게 준엄하고 단호한 심판을 내릴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장벽은 몇 번의 선동적인 외침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날카로운 감시와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법치주의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으로만 지켜질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 사태는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 의식을 시험대에 올린 사건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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