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는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제 5회 한미 산업협력 컨퍼런스를 열고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산업·투자 협력 방안'을 주제로 △인공지능(AI)·첨단반도체 △방산·조선 △에너지 등 세가지 핵심 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개회사에서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앤드류 게이틀리 주한미국대사관 상무공사 등은 트럼프 2기 행정부로 인해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며 이날 열린 컨퍼런스의 의미를 더했다.
박성택 차관은 "전 세계가 기존의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체제에서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불확실성과 비정형적 관세 협상 앞에 직면해있다"고 말했다.
앤드류 상무공사는 "한국은 조선업·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에너지 분야에서도 미국이 보유한 풍부한 자원을 통해 한미가 상호보완적인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안보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표를 맡은 김창옥 보스턴컨설팅그룹 매니징 디렉터는 AI·첨단반도체 분야에서 공급 안정화를 위한 한미 협력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김창옥 디렉터에 따르면 현재 반도체 분야의 핵심 요소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을 포함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플래시메모리(NAND) △디램(DRAM) △중앙처리장치(CPU) △패키징 기술의 수급 균형이 맞지 않아 대부분의 기업에서 공급 불안정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마틴 초르젬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반도체 특화 분야에 따라 협력이 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는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기술, 고대역폭 메모리(HBM)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나라라며 미국의 'AI확산규제' 상위 그룹에 포함된 몇 안 되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이 미국에서 설계된 GPU를 수량 제한 없이 수입해 사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다.
또한 마틴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기초 모델 기반의 어플을 만들면 미국의 GPU를 활용해 실제 모델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며 오픈AI와 카카오의 협력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협력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미국이 제조 분야에 강점이 있으면서도 현재 소부장 분야에 대한 재편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후방산업에서의 협력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김창옥 디렉터는 "AI혁명은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본격적인 투자가 급증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주제 발표를 맡은 로버트 피터스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현재 미국은 드라이도크와 조선소가 현저히 부족하다며 한국 조선 기술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군 해운 업계의 노후 선박 교체를 위한 협력 범위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평시에도 유지·보수·운영(MRO)여건을 강화해야 한다며 한국 조선소 등 해외 시설에서 정비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궁극적인 방향은 공중 미사일 방어체계의 생산과 배치를 확대해나가는 것으로 한국, 또는 양국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등 방위산업 협력을 지속적으로 이뤄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김대영 한국구가전략연구원 군사전문 연구위원은 "기존에 미 해군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오던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며 "본격화되는 미중 갈등에 '함정MRO' 사업을 위한 기회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미국 존스법에 대한 개정 및 폐지 필요성에 대해서도 한미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간 운송에 있어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만 허용되는 법률이다. 이 법이 폐지되면 한국 선박의 수주와 미국 공급이 보다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출혈 경쟁으로 인해 저가 수주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산업 전반이 저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를 맡은 마크 매네즈 미 에너지협회 회장은 한미간의 원자력 및 LNG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적인 에너지 수입 국가 중 하나다. 최근 가스 분야에서는 수입 비중이 가스공사 75%, 민간 수입 비중 25%에 달할 만큼 기업 차원의 대규모 계약 물량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국가 및 산업 단위의 조율과 효율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LNG 사업이 매력적인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각 기업 차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통합적인 협의체 구성과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도 "현재 알래스카 LNG개발 사업에 정부 간 협력 드라이브를 걸고 있음에도 민간 회사들이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양국 정부에서 리스크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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