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R의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은 오류와 결함이 발견된 차량용 소프트웨어에서 비롯했다. 2020년 전체 결함 시정(리콜) 차량의 1% 수준이던 소프트웨어 리콜은 2년 만인 2022년 20%에 근접한 비율로 급증했다(관련 기사 : 본지 7월 9일자 B1면 [단독] 자동차 똑똑해졌는데…제조사 'SW리콜' 급증). 미국에서는 2013년 도요타 캠리 차량의 소프트웨어 오류로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가속(급발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EDR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차량 제조사와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의 입장을 부정할 만한 사례도 있었다. 국내에 판매된 일부 차량에서 EDR이 사고 데이터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할 가능성이 확인돼 실제 리콜까지 이어진 사실도 드러났다.
이코노믹데일리가 22일 국토교통부 리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만3996대에 달하는 차량에서 EDR 오류 가능성이 발견돼 리콜이 이뤄졌다. 대상 차종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생산된 메르세데스-벤츠 'GLA 200 CDI 4매틱' 등 8856대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생산된 아우디 'S5 TFSI 스포트백' 등 3549대, 2018년 생산된 혼다 어코드 1591대였다.
벤츠와 아우디의 리콜 대상 차량 모두 에어백 제어 장치의 소프트웨어 오류로 EDR이 일부 데이터를 저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발견됐다. 에어백 제어 장치는 사고가 났을 때 에어백을 전개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장치다. EDR은 사고 직전 상황을 기록하기 때문에 에어백 제어 장치와 연동된다.
혼다 어코드에서는 전자식 브레이크 장치의 소프트웨어 설정 오류로 차량이 충돌하더라도 EDR에 브레이크 작동 정보가 기록되지 않는 결함이 드러났다.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도 EDR 기록상에는 '브레이크 Off'라고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일어난 '시청역 사고' 역시 수사 당국은 가해 차량 운전자의 페달 오인이 원인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국과수는 가해 차량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90% 이상 밟았다는 취지의 EDR 감정 결과를 지난 11일 경찰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시청역 사고에 앞서 2022년 경기 의왕시에서 발생한 제네시스 G80 사고(관련 기사 : 본지 7월 11일자 B1면 [단독] 급발진 의심 차량 ECU·EDR, 엑스레이 찍어보니 '기포·냉납')나 올해 4월 경남 함안군에서 일어난 현대차 투싼 사고 모두 EDR 자료를 토대로 급발진이 아니라고 분석됐다.
수사당국이 EDR을 사고 원인 분석의 결정적 자료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가해 차량 운전자의 처벌 여부를 판결하는 형사 법원에서는 EDR 자료만을 증거로 삼지 않는다.
교통사고 사건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는 "법원에선 차에서 발생한 굉음 같은 오디오가 담긴 블랙박스를 본다"면서 "법원은 운전자가 30초~1분 동안 계속 가속 페달을 밟는 실수를 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해당 운전자가 사고를 피하려고 노력했다면 무죄로 판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운전자와 차량 제조사가 차의 결함 여부를 다투는 민사 소송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 변호사는 "운전자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증거만 있으면 차량 결함이 인정될 텐데 대부분은 운전자나 동승자의 증언 밖에 없다"며 "'브레이크 Off'로 표시된 EDR 자료를 반박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민사에서는 제조사가 승소한다"고 전했다.
EDR을 무조건 불신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선우명호 고려대 자동차융합학과 석좌교수는 "애당초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급발진이 있을 수 없다"며 "설령 브레이크가 파열됐어도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다면 차가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사고 운전자가 동의하면 EDR을 공개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오히려 피해자 잘못이란 게 드러나 소비자들이 EDR을 공개하기 꺼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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