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이하 EU집행위)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오는 2035년부터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신규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금지 개정안을 최종 승인했다. 이 개정안은 EU가 설정한 그린딜 전략 중 유럽 제조업계에 가장 파급력이 큰 추진책 중 하나로 꼽혀왔으며 내연연료 차량의 단계적 폐지를 위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치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강력한 조치인 만큼 개정안 발의에서 최종 승인까지 2년 가까이 걸렸다. EU집행위가 내연기관 승용차 등 신차 판매를 2035년 이후 전면 금지하는 개정안을 제안한 것이 지난 2021년 7월, 유럽의회‧이사회가 지난해 10월 잠정 합의에 도달한 뒤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지난 2월 16일 승인됐다. 당초 3월 초 도출이 예상됐던 EU집행위의 최종 승인 발표가 3월 말로 지연된 것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각각 합성연료 이퓨얼, 바이오연료의 예외를 요구하며 강력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은 이퓨얼 사용 차량을 예외로 인정하지 않으면 2035년 내연기관차 퇴출에 합의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버텼다. EU집행위는 결국 독일의 이퓨얼 사용 차량을 예외로 수용했다. 이탈리아의 바이오엔진은 미수용됐다. 독일의 이퓨얼 예외 인정에 대해 CNN은 “독일의 강력한 로비가 작용했다”며 EU집행위의 최종 승인일 전후 잇따라 비판적 기사를 게재했다.
독일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들의 본거지 국가다. 내연기관 자동차 강국인 독일은 전기차 전환이 빨라질 경우 고용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기차 부품은 내연기관차 대비 60% 수준에 불과하다.
CNN은 “독일 정부가 ‘야심 찬 기후 정책’과 ‘강력한 산업의 이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독일의 이퓨얼을 ‘예외’로 둠으로써 기존 인프라·제품을 계속 사용할 수 있어 이 예외에 대해 로비를 벌여왔다”고 전했다.
이퓨얼은 물 전기분해로 얻은 수소(H₂)에 이산화탄소(CO₂)나 질소(N₂) 등을 합성해 만든 대표적인 합성연료다. 이퓨얼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내연기관차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내연기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기·수소차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볼보, 포드를 포함한 수십개의 자동차 관련 회사들이 EU집행위에 공개서한을 보내 “(우리는) 이미 탄소 무배출 차량에 상당한 투자를 했으며, 탈탄소 위험을 감수한 것에 대해 보상받아야 한다”며 이퓨얼 예외 인정을 받기 위해 보여준 독일의 반발은 “지난해 도달한 (탄소저감 정책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뒤집는 매우 부정적 신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U집행위가 내연 기관 자동사 신차 판매를 금지한 이번 결정은 2050년까지 EU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5%를 차지하는 내연 기관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로 줄이고, 탄소 오염이 없는 비행기를 개발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다.
◆ 예외가 된 ‘이퓨얼’을 둘러싼 갈등
이퓨얼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퓨얼 제작에 필요한 에너지 소모량이 보통 전기자동차 5∼6배에 달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다만 값싼 풍력에너지 생산이 용이한 나라에서 제조돼 선박으로 실어 나른다면 실용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독일 자동차업계에서 이퓨얼에 주력하는 업체는 포르셰가 대표 주자다. 지난 2020년 2400만 달러를 투입해 칠레에 지멘스와 함께 이퓨얼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BMW도 올리버 칩세 최고경영자(CEO)이 직접 나서 이퓨얼에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일본의 도요타·닛산·혼다가 이퓨얼에 대한 공동연구 계획을 밝혔고,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퓨얼 공동개발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독일이 이퓨얼 개발에 가장 앞서고 있으나 지나치게 비싼 생산 비용이 한계여서 앞으로 고가 차량용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퓨얼 가격은 ㎏당 8000원(ℓ당 6000원)으로 주유소 휘발류 가격보다 4~5배가량 비싸다.
테슬라를 중심으로 한 미국,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 현대차 등이 앞장선 한국 등이 빠른 속도로 전기차 전환에 나서고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폴란드, 불가리아 등이 자국의 기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밀어붙이고 있는 이퓨얼과 전기·수소차간 경쟁이 '지구 온난화 방지'란 궁극적 목표 아래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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