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지난해 매출 기준 4강에 이름을 올린 동국제강이 4세 승계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장남인 장선익 전무가 주인공이다. 장 전무는 2016년 말 이른바 '술집 폭행'으로 세간의 질타를 받고도 시간이 흘러 유력 후계자로 화려하게 경영 일선에 나선 상태다.
장세주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려 도박에 쓴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오너 리스크(위험)도 부전자전'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경영권 승계는 별 탈 없이 진행 중이다. 장 회장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취업 제한이 풀렸는데 공식적으로는 경영에 복귀하지 않았다. 최근 지분을 장선익·승익 두 아들에게 일부 증여하는 등 후계 구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술집 폭행 사건' 구렁이 담 넘듯
술집 폭행 사건이 일어난 때는 장선익 전무가 이사로 재직한 2016년이다. 그해 12월 26일 밤 서울 용산경찰서에 웬 남성이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관이 출동해 현장을 정리했고 이 소식은 용산경찰서를 출입하는 사건 담당 기자들에 의해 빠르게 타전됐다. 이듬해 1월 경찰은 사건을 일으킨 장 전무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장 전무는 당시 술값 문제로 종업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컵을 던져 양주 여러 병을 깼다. 종업원에게 케이크를 사 오라고 시켰는데 그 값으로 30만원이 청구되자 바가지를 씌우는 게 아니냐며 항의하다 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일자 장 전무는 사과문을 내고 "진심으로 깊게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선 경찰 조사에서도 잘못을 인정하며 가게가 입은 피해를 변상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가게 측도 장 전무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장 전무에 적용된 재물손괴 혐의는 당사자 간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이 이뤄지기 때문에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장 전무는 이 사건으로 별다른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그가 치른 대가는 재벌가 3·4세가 일탈을 일삼을 때마다 이들의 그릇된 특권 의식을 꼬집는 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이마저 뉴스에서 잦아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국제강은 그를 상무로, 다시 전무로 고속 승진시키며 물타기에 성공했다.
동국제강 연말 임원 인사에서 장 전무 이름이 등장한 때는 2016년 이후 4년 만인 2020년이다. 그는 술집 폭행 사건 당시 동국제강 전략실 비전팀장이었다가 인천공장 생산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해 말 본사 구매실장 전무로 올라서며 후계 구도가 한층 뚜렷해졌다.
장 전무는 2007년 입사했다. 전무 직급을 달기까지는 16년이 걸린 셈이다. 이 기간 해외 법인과 본사 법무팀, 전략실 등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통상 동국제강 경영 수업이 20년 이상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대권을 물려받을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동국제강 4세 승계는 장세주 회장 경영 복귀와 함께 이뤄지는 모양새다. 장 회장은 2005년부터 10여 년간 제철소에서 발생한 파철(쇳조각)을 세금 신고 없이 팔아치우는 방법 등으로 12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횡령해 미국에서 도박을 한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8년 4월 형기를 6개월 남기고 가석방됐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에 따라 형 집행 종료 이후 5년 동안 취업이 제한됐다.
지난해 8월 특사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장 회장에 적용된 취업 제한은 올해 4월까지 이어진다. 장 회장은 약 8개월 빨리 취업 제한 족쇄에서 풀려나면서 경영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동국제강은 오는 5월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장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결의할 예정이다.
장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 사업 구조 개편과 승계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사 직후 경기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할 당시만 해도 "경영 복귀는 천천히 생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예상보다 경영 복귀 선언 시점이 빠른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이 잇따라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는데도 한 명은 경영에 복귀하고 다른 한 명은 후계자 코스를 밟고 있어서다.
◆두 아들에 지분 증여...영향력 확대
재계에서는 형을 대신해 수년 간 회사를 이끌며 성과를 낸 장세욱 부회장이 올해 5월 주총에서 어떻게 될지 주목하고 있다. 장 부회장은 장세주 회장이 도박 문제로 2015년 구속된 사이 대표이사를 맡아 동국제강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장 부회장 체제에서 동국제강은 실적 개선에 성공해 지난해까지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장 부회장이 성과를 보인 만큼 장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다고 해도 전권을 넘겨받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형제가 경영권 분쟁을 벌이기보다는 역할을 분담하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올해 상반기(1~6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하는 동국제강으로서는 뒤늦은 경영권 다툼으로 에너지를 허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동국제강은 이 회사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한 상태다. 존속 법인 명칭을 동국홀딩스로 바꾸고 열연사업 부문을 동국제강으로, 냉연사업 부문을 동국씨엠으로 각각 신설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장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동국홀딩스 지분을 보유하며 국내·외 자회사와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형태가 된다.
지주사 체제가 출범하면 장선익 전무의 영향력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장세주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6.24%다. 장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동국홀딩스에 현물출자함으로써 보유 지분을 늘릴 계획이다.
인적분할에 앞서 장 회장은 장 전무와 차남 장승익씨에게 총 30만주를 증여했다. 이 가운데 장 전무는 20만주를 받아 지분율을 1%까지 끌어올렸다. 이전까지 장 전무 지분율은 0.83%에 불과했다. 정 회장은 현재 1300만주(13.62%)를 보유 중이다.
인적분할 비율은 동국홀딩스 16.69%, 동국제강 51.98%, 동국씨엠 31.33%다. 현재 동국제강 주식 1000주를 가진 사람은 분할 후 동국홀딩스 166주, 동국제강 519주, 동국씨엠 313주 등 총 998주를 갖게 된다. 이때 소수점 둘째 자리 이하에 해당하는 주식은 버린다. 나머지 2주는 단주(일정 단위 미만 주식)로서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구체적인 현물출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장 전무로서는 지분을 대폭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말 발표한 인적분할 설명자료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의 총자산 중 국내 계열사 장부가액이 50% 이상 돼야 한다"며 현물출자 이유를 설명했다. 다시 말해 지주사가 갖춰야 할 법적 요건을 맞추기 위해 현물출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상 내부 거래 규제를 피하기 위해 30%가 약간 못 미치는 수준까지만 출자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장 전무가 현물출자에 참여한다면 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임원을 달긴 했으나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이어서 높은 보수를 받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 배당으로 충당하는 방법도 있지만 동국제강이 지난달 공시한 배당금(1주당 500원)과 장 전무가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주식(약 79만주)을 고려하면 4억여원 남짓이다. 장 전무로서는 장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증여 또는 상속받아야만 한다.
승계가 이뤄지기 전까지 시간은 여유 있는 편이다. 장세주 회장은 1953년생으로 올해 70대에 접어들며 아직 왕성한 활동이 가능하다. 승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최소한 부회장 직급까진 올라가야 하는데 부사장과 사장을 차례로 거치더라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재계 50위권 밖 중견 그룹에서는 빠른 세대 교체를 위해 계단을 건너뛰고 승진하는 사례가 있어 승계 여부나 시기는 어디까지나 장 회장 뜻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내부 사정이야 어떻든 장 회장 부자를 둘러싼 리스크는 계속해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국제강은 최근 몇 년간 산재가 잇따르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척도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수준도 그리 높지 않다. 6일 한국ESG기준원(옛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동국제강의 ESG 등급은 전년(2021) 대비 한 단계 하락한 'B' 수준이다. 순조롭기만 해 보이는 동국제강 4세 승계에서 기업 이미지가 발목을 잡진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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