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디지털 기술 발달과 맞물려 전 세계 보험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강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헬스케어 서비스는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질병의 예방·관리, 건강관리·증진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앞서 2020년 말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부수 업무로 허용했다. 보험사들에게 보험계약자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길이 열린 셈이다. 또 헬스케어 전문회사를 자회사로 소유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됐다. 규제 완화와 더불어 금융위는 헬스케어 사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보험업권 헬스케어 활성화 TF’를 꾸리기도 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보험사의 헬스케어 진출 의의와 전략’ 보고서를 보면 보험 산업과 헬스케어 산업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헬스케어는 생애에 걸친 건강 관리가 핵심이고, 보험은 개인의 생애 리스크를 관리하고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보험과 헬스케어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보험사가 헬스케어 산업에 참여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보험계약자의 건강 리스크 관리는 곧 보험회사의 손해율 개선 등 수익성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보험사의 헬스케어 산업 참여는 개별 보험사의 경영성과 개선 및 신규 산업 진출의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의료비 지출 효율화,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하고 나아가 국가 성장동력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해외 주요국, 디지털 기술 접목해 헬스케어 사업 고도화
보험 업계에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보험사들도 각국의 의료환경에 맞게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요가 증가해 ‘디지털 헬스케어’가 급성장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9년 1063억달러(약 125조원)에서 2026년에는 6394억원(약 75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를 보면, 중국은 의료 접근성에 대한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확대를 위해 의료 기관의 온라인 처방, 약물 배송 등을 추진했다.
중국 최대 보험사인 평안보험은 2014년 온라인 헬스케어 플랫폼 ‘굿닥터(Good Doctor)’를 설립했다. 이후 고객 수요가 높은 원격 의료서비스를 기반으로 고객을 확보해 중국 최대 원격진료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또 플랫폼 이용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모회사의 보험상품을 교차 판매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급격한 고령화로 요양·간병 사업이 주요 헬스케어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대형 손해보험사인 손보홀딩스는 2015년 요양 사업에 진출한 후 인수합병(M&A)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2018년 자회사 솜포케어를 설립했다. 솜포케어는 오프라인 요양 서비스에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요양·간병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미국은 보험사의 손해율 관리, 상품 개발 등을 중심으로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아공 최대 보험사인 디스커버리는 온라인 헬스케어 플랫폼 ‘바이탈리티(Vitality)’에서 고객 맞춤형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건강관리를 지도해주고 있다. 또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을 제공하고, 고객 건강 개선에 따라 손해율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보험 본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 국내 보험사도 ‘헬스케어’ 공략…모바일 앱 선보여
국내에서는 AIA생명이 업계 최초로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AIA 바이탈리티’를 출시했다. AIA 생명은 2018년 한국법인으로 전환하면서 고객 건강관리 노력에 따라 혜택을 제공하는 건강증진형 상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후 KB손해보험이 지난해 헬스케어 자회사인 ‘KB헬스케어’를 설립한 후 헬스케어 플랫폼 ‘KB 오케어(O-Care)’를 직원 대상으로 시범 출시했다. 모바일 앱에서 건강 상태 분석, 고객별 목표 추천, 식단 데이터 분석, 유전체 분석 등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프로그램’ 운영도 준비 중이다.
신한라이프는 올해 2월 헬스케어 자회사 ‘신한큐브온’을 출범시켰다. 신한큐브온은 헬스케어 플랫폼 ‘하우핏’으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트레이닝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건강 증진 콘텐츠를 출시할 예정이다. 신한라이프는 헬스케어 관련 파트너사들과 적극 협업해 건강 콘텐츠를 확충하고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생명도 헬스케어 플랫폼 ‘헬로(HELLO)’로 고객의 건강 관리를 돕고 있다. 고객의 건강검진 정보와 일상생활에서의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건강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생명도 올해 4월 맞춤형 헬스케어 플랫폼 ‘더 헬스’를 선보이고 헬스케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더 헬스는 일상 속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인공지능(AI)이 운동 자세를 교정해주는 기능이 탑재돼 있으며 하루 1만보 건기 등 다양한 건강챌린지도 참여할 수 있다.
NH농협생명은 올해 7월 헬스케어 플랫폼 ‘NH헬스케어’를 출시할 예정이다. NH헬스케어는 걷기운동, 건강코칭, 건강관리, 건강상담, 세대별 콘텐츠 등 5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이한 점은 AI음주 건강케어 서비스와 랜선 텃밭 가꾸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AI음주 건강케어는 술병 자동 인식으로 AI가 술의 명칭, 알코올 도수, 용량 등을 인식해 이용자가 입력한 주량을 초과할 경우 건강 경고 메시지를 제공한다. 랜선 텃밭 가꾸기는 걸음수 목표 달성 시 선택한 농작물을 온라인에서 키울 수 있는 서비스다. 저장고에 농작물 20개가 채워지면 기부하거나 NH포인트로 교환해 농협몰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국내 생보사들은 주로 앱을 기반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보험사는 앞으로도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예방적 건강관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헬스케어 사업은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험사들이 대부분 건강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국내 보험회사가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실제 이용자들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걷기 등 미션 달성에 대한 다양한 리워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헬스케어 서비스에 대한 고객 반응은 기대 이하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고객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건강상담, 전문병원 알선 등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어 헬스케어 서비스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당국과 협력해 건강 관련 데이터 활용을 확대하고, 의료법 탄력적 운영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환경 하에서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한국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선정하고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계획도 밝혔다.
특히 새 정부의 공공의료데이터 논의가 재개하면서 업계는 공공의료데이터가 전면 개방될 경우 헬스케어 산업이 더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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