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흔히 독서와 문학의 계절이라 부른다. 가을이 되면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어 들여 풍성함을 채우듯, 우리는 책 속에서 지식을 거두어 들여 마음을 풍요롭게 채운다.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작품 속의 장소를 찾아 감성을 채우는 것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는 가을을 맞아 한국문학의 정취가 묻어나는 감성 여행지 5곳을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년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노래 ‘향수’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였다.
충북 옥천에 있는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옥천 구읍의 실개천 앞에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다. 정지용문학관에서는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고, 시낭송실에서 그의 시를 목청껏 낭독할 수 있다.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지였지만, 1905년 금구리 일대에 경부선 옥천역이 들어서며 시나브로 쇠락해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에 들어서면 가게는 낡았지만, 정지용의 시어를 사용한 세련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담배 가게에는 〈오월 소식〉 중 “모초롬 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란 구절을 간판처럼 걸었다. 담배 가게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지나간다. 왠지 고향 마을에 온 느낌이 들어 정겹다.
실개천 옆에 자리한 초가지붕이 정지용생가다. 생가 앞에는 〈향수〉 시비가 있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세 칸 초가와 창고가 마주 본다. 소박한 마루에 앉아 〈향수〉를 떠올린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란 구절처럼 정지용의 늙은 아버지가 방 안에 누워 있을 것 같다.
안방에는 동시 〈호수〉가 걸려 있다. 정지용의 많은 시 중에 동시는 짧고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호수〉는 절창이다. “얼골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픈 마음 /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생가 바로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방향으로 나오면 긴 돌이 보인다. ‘청석교’라 부르는 이 돌에 얽힌 사연이 깊다.
이 돌은 1940년대 축향국민학교에 있던 황국신민서사비다.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적힌 비석으로, 학생들은 조회 시간마다 이 구절을 외쳤다고 한다. 아픈 역사가 담긴 비석을 꾹 밟고 지나가면 커다란 정지용 동상이 반긴다.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크게 전시실과 문학 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정지용과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존이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볼수록 고향의 전경이 떠오른다.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은 정지용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에 태어나 열두 살에 결혼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향수〉 〈고향〉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조선 문단의 대표 시인으로 떠올랐다.
정지용은 빼어난 후배 시인을 발굴한 《문장》 심사 위원으로도 유명하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이상을 추천해 등단시켰다.
정지용이 조지훈 시인에게 보낸 편지 사본에서 그의 소탈한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보고 스승이란 말슴이 만부당하오나 구지 스승이라 부르실 바에야 스승 못지않은 형 노릇마자 구타여 사양할 것이 아니오매 이제로 내가 형이로라 거들거리며 그대를 공경하오리다….”
당시 조지훈은 〈고풍의상〉으로 1회, 그 유명한 〈승무〉로 2회, 〈봉황수〉로 3회 추천 받아 등단했다. 세 편은 지금까지 조지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정지용의 작품을 전시한 곳에서 귀한 초판본 시집을 만난다. 《백록담》의 빛바랜 사슴 그림 표지를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정지용문학관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설은 시낭송실이다. 노래방 같은 공간에서 마이크를 잡고 〈향수〉 〈백록담〉 〈유리창 1〉 〈고향〉 〈홍시〉 등 시인의 명작을 낭랑하게 읽어볼 수 있다.
정지용문학관에서 나오면 장계국민관광지로 가자. 금강이 흐르는 낙후된 유원지를 옥천군이 ‘멋진신세계’로 꾸몄다.
‘멋진신세계’는 정지용의 시 세계를 공간적으로 해석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다. 여러 작가가 시를 모티프로 참여해 시와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모단광장’이 반긴다.
‘모단광장’은 원고지 한 장을 건물과 광장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모단광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창’ ‘유리병’ ‘오월 소식’ 등이 기다린다.
모두 정지용의 시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시와 미술의 만남이 신선하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불쑥 금강의 풍경이 나타난다. 억새와 갈대가 바람에 날리니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음에는 수려한 금강 풍경이 펼쳐지는 부소담악(赴召潭岳)을 만날 차례다. 장계국민관광지 서쪽으로 20분쯤 가면 소옥천이 금강과 합류한 곳에 있다.
부소담악은 물 위에 솟은 기암절벽으로,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일부가 물에 잠겼다. 부소담악을 보려면 추소정으로 가야 한다. 추소리 ‘서낭재가든’에서 700m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언덕 위 추소정에 오르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앞쪽으로 야트막한 능선이 악어처럼 웅크린 모습이 보인다.
능선이 강물과 만나는 절벽이 부소담악이지만, 물이 차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물과 능선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옥천 여행의 마무리는 용암사가 제격이다. 용암사는 미국 CNN이 한국의 일출 명소로 꼽았지만, 꼭 일출이 아니라도 볼 만하다. 절 뒤쪽으로 데크를 따라 오르면 운무대가 나온다. 운무대에 서면 옥천 일대가 너른 분지에 들어앉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장관이다. 마침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책을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작품 속의 장소를 찾아 감성을 채우는 것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는 가을을 맞아 한국문학의 정취가 묻어나는 감성 여행지 5곳을 가볼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이 노래 덕분에 정지용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 반열에 올라섰고, 잊히고 사라진 고향 풍경이 우리 마음속에 다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충북 옥천에 있는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마치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옥천 구읍의 실개천 앞에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다. 정지용문학관에서는 시인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고, 시낭송실에서 그의 시를 목청껏 낭독할 수 있다.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한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예전에는 옥천의 중심지였지만, 1905년 금구리 일대에 경부선 옥천역이 들어서며 시나브로 쇠락해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에 들어서면 가게는 낡았지만, 정지용의 시어를 사용한 세련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담배 가게에는 〈오월 소식〉 중 “모초롬 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란 구절을 간판처럼 걸었다. 담배 가게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지나간다. 왠지 고향 마을에 온 느낌이 들어 정겹다.
실개천 옆에 자리한 초가지붕이 정지용생가다. 생가 앞에는 〈향수〉 시비가 있다.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세 칸 초가와 창고가 마주 본다. 소박한 마루에 앉아 〈향수〉를 떠올린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란 구절처럼 정지용의 늙은 아버지가 방 안에 누워 있을 것 같다.
안방에는 동시 〈호수〉가 걸려 있다. 정지용의 많은 시 중에 동시는 짧고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호수〉는 절창이다. “얼골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픈 마음 /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생가 바로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방향으로 나오면 긴 돌이 보인다. ‘청석교’라 부르는 이 돌에 얽힌 사연이 깊다.
이 돌은 1940년대 축향국민학교에 있던 황국신민서사비다.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우리들은 인고 단련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적힌 비석으로, 학생들은 조회 시간마다 이 구절을 외쳤다고 한다. 아픈 역사가 담긴 비석을 꾹 밟고 지나가면 커다란 정지용 동상이 반긴다.
단층 건물인 정지용문학관은 크게 전시실과 문학 체험 공간으로 나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소곳이 앉은 정지용 밀랍인형이 보인다.
정지용과 기념 촬영할 수 있는 포토 존이다. 전시실로 들어서니 붓글씨로 〈향수〉를 적은 액자가 눈에 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볼수록 고향의 전경이 떠오른다. 마치 내 고향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정지용 시인과 그의 시대’ 안내판은 정지용의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지용은 1902년에 태어나 열두 살에 결혼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향수〉 〈고향〉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내놓으며 조선 문단의 대표 시인으로 떠올랐다.
정지용은 빼어난 후배 시인을 발굴한 《문장》 심사 위원으로도 유명하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이상을 추천해 등단시켰다.
정지용이 조지훈 시인에게 보낸 편지 사본에서 그의 소탈한 인간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보고 스승이란 말슴이 만부당하오나 구지 스승이라 부르실 바에야 스승 못지않은 형 노릇마자 구타여 사양할 것이 아니오매 이제로 내가 형이로라 거들거리며 그대를 공경하오리다….”
당시 조지훈은 〈고풍의상〉으로 1회, 그 유명한 〈승무〉로 2회, 〈봉황수〉로 3회 추천 받아 등단했다. 세 편은 지금까지 조지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정지용의 작품을 전시한 곳에서 귀한 초판본 시집을 만난다. 《백록담》의 빛바랜 사슴 그림 표지를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정지용문학관에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설은 시낭송실이다. 노래방 같은 공간에서 마이크를 잡고 〈향수〉 〈백록담〉 〈유리창 1〉 〈고향〉 〈홍시〉 등 시인의 명작을 낭랑하게 읽어볼 수 있다.
정지용문학관에서 나오면 장계국민관광지로 가자. 금강이 흐르는 낙후된 유원지를 옥천군이 ‘멋진신세계’로 꾸몄다.
‘멋진신세계’는 정지용의 시 세계를 공간적으로 해석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다. 여러 작가가 시를 모티프로 참여해 시와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만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모단광장’이 반긴다.
‘모단광장’은 원고지 한 장을 건물과 광장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모단광장’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창’ ‘유리병’ ‘오월 소식’ 등이 기다린다.
모두 정지용의 시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시와 미술의 만남이 신선하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르면 불쑥 금강의 풍경이 나타난다. 억새와 갈대가 바람에 날리니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음에는 수려한 금강 풍경이 펼쳐지는 부소담악(赴召潭岳)을 만날 차례다. 장계국민관광지 서쪽으로 20분쯤 가면 소옥천이 금강과 합류한 곳에 있다.
부소담악은 물 위에 솟은 기암절벽으로, 대청댐이 준공되면서 일부가 물에 잠겼다. 부소담악을 보려면 추소정으로 가야 한다. 추소리 ‘서낭재가든’에서 700m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언덕 위 추소정에 오르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앞쪽으로 야트막한 능선이 악어처럼 웅크린 모습이 보인다.
능선이 강물과 만나는 절벽이 부소담악이지만, 물이 차서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물과 능선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옥천 여행의 마무리는 용암사가 제격이다. 용암사는 미국 CNN이 한국의 일출 명소로 꼽았지만, 꼭 일출이 아니라도 볼 만하다. 절 뒤쪽으로 데크를 따라 오르면 운무대가 나온다. 운무대에 서면 옥천 일대가 너른 분지에 들어앉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장관이다. 마침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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