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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전력·보안 다 갖췄다"… 소버린 AI 인프라 주도권 쥔 통신사

선재관 기자 2025-12-18 08:15:45
2030년 수조 원 시장 열린다 GPUaaS로 AI 영토 확장하는 통신 업계 DBRS "소버린 AI 시대, 통신사가 승기 잡는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2월 30일 가산 AI 데이터센터를 오픈하고, 시범 운영을 마친 뒤 AI 클라우드 서비스인 ‘SKT GPUaaS(GPU-as-a-Service)’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 가산 IDC에 구축된 AI 데이터센터(AIDC) 모습. [사진=SKB]


[이코노믹데일리] 각국 정부가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자국 통제하에 두는 ‘소버린(Sovereign) AI’ 전략을 강화하는 가운데 통신사가 이 시장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모닝스타 DBRS는 지난달 26일 발간한 ‘통신사는 소버린 AI 인프라 구축 계획의 수혜를 입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보고서를 통해 소버린 AI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통신사의 역할이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DBRS는 소버린 AI 계획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적용하는 통신사들이 향후 5년간 정부 및 기업(B2B) 시장 점유율을 대폭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통신사가 소버린 AI 시장에서 구조적 우위를 점하는 이유로 △대규모 통신망 설계 및 운영 경험 △우수한 네트워크 접근성 △광섬유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의 직접 보유 △안정적인 전력 및 시설 운영 역량 등을 꼽았다.

소버린 AI는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산업이지만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규제 대응 역량과 거버넌스 설계 능력에 있다. 통신사는 오랜 기간 국가 단위의 엄격한 통신 법률과 규제를 준수하며 정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데이터 보안과 민감성이 최우선시되는 소버린 AI 인프라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타 업종이 모방하기 어려운 강력한 진입 장벽이자 경쟁력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다.

시장 성장성도 밝다. 보고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분석을 인용해 통신사가 제공하는 GPUaaS(서비스형 GPU) 기반 소버린 AI 인프라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수십억 달러 단위로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GPUaaS는 고가의 AI 반도체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 클라우드 형태로 빌려 쓰는 서비스로 AI 개발 수요가 폭증하면서 통신사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통신사들은 이미 정부 정책과 기업 수요에 발맞춰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캐나다 통신사 텔러스(Telus)는 지난 9월 퀘벡주에 캐나다 최초의 소버린 AI 팩토리를 개소하며 공공 및 민간 부문의 AI 데이터 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통신사 패스트웹(Fastweb)이 엔비디아와 협력해 자국어 거대언어모델(LLM) 구동을 위한 슈퍼컴퓨터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프랑스의 일리아드(Iliad)와 노르웨이 텔레노르(Telenor) 등도 소버린 AI 인프라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통신사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SK텔레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프로젝트의 정예 멤버로 선정돼 리벨리온 등 국내 AI 반도체 및 데이터 기업들과 컨설팅을 구성했다. SK텔레콤은 5000억 개 매개변수 규모의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착수했으며 향후 이를 수조 개 규모로 확장해 한국형 소버린 AI 생태계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KT 역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한국형 소버린 클라우드 및 AI 모델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T는 공공과 금융 등 규제 산업에 특화된 보안성을 갖춘 인프라를 제공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LG유플러스도 파주와 평촌 등에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를 확충하며 AI 인프라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소버린 AI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인프라에 규제 준수 역량까지 갖춘 통신사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사업자로 재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