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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된 '흔들기'…KT 이사후보추천위 향한 정치권의 경고, '약'일까 '독'일까

선재관 기자 2025-11-27 15:46:40
KT 차기 CEO 선임…여의도가 더 시끄러운 이유 野 과방위·노조, 일제히 "카르텔 타파·낙하산 반대" 성명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국가 기간통신사업자 KT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출 시계가 빨라지면서 여의도 정치권과 노조, 시민단체의 개입이 노골화되고 있다. 

겉으로는 '낙하산 반대'와 '전문성'을 외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 진영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히기 위한 '포석 깔기'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주인 없는 회사 KT가 정권 교체기나 CEO 선임철마다 겪어야 했던 '외풍(外風)의 잔혹사'가 2025년 겨울에도 어김없이 재현되는 모양새다.

27일 정치권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황정아, 이주희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향해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했다. 이들은 "KT 이사후보추천위는 그들만의 카르텔을 끊어내고 무너진 국민 신뢰를 회복할 혁신 경영진을 선출하라"고 촉구했다.

◆ 野 의원들 "카르텔 끊어라" vs 업계 "정치적 훈수두기"

이들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KT의 총체적 난맥상을 거론하며 현 경영진과 이사회를 싸잡아 비판했다. 관리 부실로 인한 불법 펨토셀 범죄 악용 방치,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그리고 서버 43대가 악성코드에 감염됐음에도 '티타임 구두보고'로 넘기고 서버를 무단 폐기한 은폐 시도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의원들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수십 년간 KT를 병들게 한 '특정 학연·지연 중심의 파벌 경영'"이라며 "좌고우면하지 말고 통신 본업은 물론 AI 기술과 정부 정책을 아우르는 '통신·AI·경영·정책' 4박자를 갖춘 최고 전문가를 뽑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사용한 '카르텔'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이는 윤석열 정부 초기 여당이 통신업계를 압박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프레임이다. 야당 의원들이 이를 차용해 이사회를 압박하는 것은 결국 정치권이 KT CEO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 11명 중 단 3명만이 성명에 이름을 올린 점도 이러한 '정치적 셈법'을 방증한다.

◆ 노조·시민단체 "정치권 줄 대기 멈춰라"…복잡한 내부 셈법

같은 날 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KT 새노조(제2노조) 및 시민단체들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특정 인물이나 조건을 내세우기보다 '정치적 외풍 차단'에 방점을 찍었다.

이들은 "3년 전 사장 선출 과정에서 이사회가 두 차례나 후보를 확정하고도 '용산에서 격노했다'는 말 한마디에 초유의 경영 공백을 초래했다"며 "정치권 줄 대기 선임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사회는 대표 선임 기준을 투명하게 밝히고 후보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KT 최대 노조인 KT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통해 "차기 CEO는 외풍으로부터 자유롭고 통신의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겸비해야 한다"며 "낙하산 인사는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 '주인 없는 회사'의 비극…이사회가 중심 잡아야

현재 KT를 둘러싼 외부의 목소리는 '아전인수' 격이다. 정치권은 '국민 기업의 정상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인물을 심거나 최소한 입맛에 맞는 인물을 고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노조 역시 조직의 안정을 외치지만 내부 파벌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미는 후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외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KT의 경영 리스크는 증폭된다는 점이다. KT 출신 관계자의 말처럼 "주인 없는 회사라는 꼬리표가 있어도 엄연히 주주와 임직원이 있는 민간 기업"이다. 정치권이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훈수를 두는 것은 시장 경제 논리에 반할 뿐만 아니라 KT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지난번처럼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오락가락하다가는 또다시 경영 공백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이번만큼은 '카르텔 타파'라는 정치적 구호나 '낙하산 반대'라는 노조의 구호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이익'이라는 원칙 아래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33명의 후보군 중 누가 진정으로 위기의 KT를 구해낼 적임자인지 이사회가 외부의 소음(Noise)을 차단하고 실력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지 시장이 지켜보고 있다. KT의 미래는 정치권의 입이 아니라 이사회의 독립적인 판단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