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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해외투자 놓고 기재부·복지부 '첨예한 갈등'…환율방어 논쟁 심화

유명환 기자 2025-11-24 16:30:54
기재부 "환율안정 수단 활용" vs 복지부 "기금 안정성 우선" 원화 1477.1원까지 급락…정부 부처 간 입장 차이 더 벌어져
24일 원/달러 환율이 1.5원 오른 1,477.1원으로 집계된 24일 서울 중구 명동의 사설 환전소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환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를 둘러싸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는 급격한 환율 악화 속에서 기재부가 국민연금을 환율 안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복지부가 국민의 노후자산 보호를 이유로 강한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24일 환율 상황은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5원 오른 1477.1원을 기록하며 7개월 반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원화 약세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 간 의견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최근 환율의 불안정성·대내외 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복지부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반해 기획재정부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날 기재부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의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기재부·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이 참여하는 이 협의체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조화'라는 표현 뒤에 숨겨진 의도다. 기재부는 첫 회의에서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가 외환시장 수급에 미치는 변동성을 줄이는 방안을 비중 있게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민연금이 더 적극적으로 환헤지에 나서거나 해외투자 시점을 조정하는 방안이 협의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의 도구로 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복지부의 반발도 거세다. 국민연금을 환율 안정 수단에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노후자산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환헤지 비용 증가나 해외투자 축소는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수익률 하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2025년 국민연금 급여지급 예산을 48조 4100억원에서 49조 9700억원으로 1조 5600억원 증액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금 운용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은 더 심화될 조짐을 보인다. 원화 약세가 계속되면서 환율 안정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재부의 적극적 개입이 불가피해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복지부는 국민의 노후 자산을 명분으로 기금 중립성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은경 장관은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민하게 대응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