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수도권 KT 가입자들을 덮친 ‘유령 소액결제’ 사태의 원인으로 ‘가짜 기지국(불법 초소형 기지국)’이 공식적으로 지목됐다. 이는 단순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 국가 기간 통신망의 보안 체계가 외부 공격에 의해 뚫렸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정부는 즉각 민관 합동 조사단을 가동하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를 포함한 통신 3사 전체에 대한 긴급 점검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T는 10일 열린 긴급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가 불법 초소형 기지국을 통한 해킹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KT는 자체 조사 과정에서 통화 패턴을 분석하던 중 자사 망에 등록되지 않은 이상한 기지국 ID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커가 특정 지역에 이 ‘가짜 기지국’을 설치한 뒤 범위 내에 들어온 KT 가입자들의 스마트폰 접속을 유도해 통신을 가로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유력한 시나리오다.
일단 통신을 가로챈 해커는 피해자의 ARS 인증 과정의 허점을 노렸다. KT에 따르면 이번 피해는 대부분 상품권 사이트 등에서 ARS 인증을 통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해커가 가짜 기지국을 통해 피해자의 통신을 장악한 상태에서 소액결제 시도 시 걸려오는 ARS 인증 전화를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착신 전환하는 방식으로 인증을 통과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스미싱 링크 클릭 등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피해를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KT는 지난 5일 새벽, 해당 불법 기지국 ID의 접속을 차단했으며 이후 추가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등록 장비가 어떻게 KT의 핵심 네트워크망에 접속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여러 의문점이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며 “민관 합동조사단을 통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KT가 자체적으로 전체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는 278건, 약 1억7000만원에 달한다. KT는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고객에게도 직접 연락해 상황을 안내하고 발생한 금전적 피해는 전액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 신뢰 잃은 통신사, 잇따른 보안 논란의 연장선
이번 사태는 SK텔레콤의 대규모 해킹 사태와 KT·LG유플러스의 해킹 의혹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져 나오면서 통신업계 전반의 보안 불감증에 대한 비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KT는 최근 해외 보안매체 ‘프랙(Phrack)’이 제기한 해킹 의혹에 대해 자진신고를 거부하고 관련 서버를 폐기했다는 의혹까지 받으며 신뢰에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과기정통부는 ‘프랙’ 보고서에서 제기된 의혹과 이번 소액결제 사태의 연관성 여부도 합동조사단 조사 범위에 포함해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번에 드러난 초소형 기지국(펨토셀)의 관리 부실 문제에 대해서도 규제 보완을 검토하기로 했다.
류제명 2차관은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사단을 통해 신속히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 확산을 막겠다”며 “수사를 진행 중인 경찰과도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의 결과는 KT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통신망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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