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과거의 그림자 딛고, IT-엔터테인먼트 기업 품에 안은 한경협

선재관 기자 2025-02-21 16:18:24
'경제 벼랑 끝' 외침은 재계 부활의 신호탄인가 국정농단 사건때 200곳 무더기 탈퇴 IT 공룡 네이버·카카오, 엔터 강자 하이브 합류 46개사 대거 영입하며 환골탈태 시도 류진 회장 연임, 'IMF 위기보다 심각' 경제 진단
한국경제인협회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한때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낙인찍히며 존립 위기까지 겪었던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정보기술(IT),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을 대거 영입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리고 있다. 과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고 시대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는 기업들을 품에 안으며 재계의 중심으로 재도약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한경협은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제64회 정기총회에서 네이버, 카카오, 하이브 등 46개사의 신규 회원 가입을 승인했다. 이는 단순한 회원 수 증가를 넘어 조직의 체질 개선과 외연 확장을 동시에 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과거 전경련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IT 공룡 기업들의 합류는 한경협이 시대 흐름을 읽고 미래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두나무, 메가존클라우드 등 혁신적인 IT 기업들과 더불어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의 가세는 한경협이 전통 제조업 중심의 재계 단체에서 벗어나 디지털 경제와 문화 산업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 LG유플러스, LG화학, 포스코, 동국제강 등 과거 전경련에 몸담았다가 국정농단 사태 이후 탈퇴했던 주요 대기업들의 복귀 또한 눈에 띈다. 이는 한경협이 과거의 과오를 딛고 류진 회장 체제 하에 쇄신을 통해 재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때 600여 개사에 육박했던 전경련 회원사는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400여 개사 수준으로 급감했으나 이번 대규모 영입을 통해 470개사로 증가하며 양적 회복세 또한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앞줄 가운데)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제64회 정기총회에서 신규 회원사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석우 두나무 대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사진=연합뉴스]
재계 안팎에서는 한경협의 이러한 변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과거 정경유착의 고리로 비판받았던 전력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IT 기업들과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시대 변화에 발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한상공회의소에 맏형 자리를 내어준 상황에서 한경협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재계 내 존재감을 다시금 부각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직까지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국정농단 사태로 실추된 이미지를 완전히 회복하고 대한상공회의소와의 경쟁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다. 또한 새롭게 합류한 IT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한경협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편 이날 총회에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회원사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하며 2027년 2월까지 한경협을 이끌게 되었다. 류 회장은 연임 수락 연설에서 “한국 경제가 성장과 정체의 갈림길이 아닌 벼랑 끝에 서 있다”며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못하다”고 진단하며 “낡고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저출생과 주력 산업 노후화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고갈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류 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단순히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수사적 표현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 경제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고(高)’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류 회장의 ‘벼랑 끝’ 발언은 재계의 위기감을 대변하는 동시에 정부와 국회, 국민들에게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단합과 협력을 촉구하는 절박한 외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제64회 정기총회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경협 제공]
류 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으로 ‘성장 엔진 재점화’를 제시하며, “낡은 규제 혁파”, “첨단산업 육성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 “정치적 갈등 해소를 통한 국민 통합” 등을 강조했다. 특히 다음 달 경제사절단을 꾸려 미국을 방문,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글로벌 불확실성 해소와 기업들의 해외 진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경협의 이번 회원사 확대와 류진 회장의 연임은 침체된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재계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딛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혁신을 선택한 한경협의 행보가 과연 ‘경제 벼랑 끝’에 선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재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