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최근 자본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데다, 탄핵 여파로 주식시장까지 쪼그라들어 소액주주가 주주행동주의에 직접 나서기에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며 "행동주의 펀드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면 소액주주가 반기는 식으로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고 앞으로 이 같은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월부터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다.
두산에너빌리티는 12일로 예정된 임시 주총을 지난 10일 철회했고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옮기는 지배구조 개편 계획은 무산됐다. 최근 '12·3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주매청) 가격 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분 6.85%%를 가진 국민연금공단이 두산에너빌리티 분할합병안에 대해 사실상 기권을 선언한 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기에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 움직임도 한 몫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임시 주총 철회를 밝히는 4차 주주서한에 “주가가 하락함에 따라 주매청 행사를 위해 (기관투자자들의) 반대 또는 (소액주주들의) 불참으로 선회한 주주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이끈 게 바로 얼라인이다. 얼라인은 지난 10월 두산밥캣 지분 1.35%를 확보했다고 밝히며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달 28일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를 상대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를 공시하며 두산밥캣 ‘헐값’ 매각 저지에도 나섰다.
얼라인은 지난해에도 의결권을 가진 주식의 60%가 넘는 약 1400만주의 위임장을 모아 SM엔터테인먼트 창사 이래 첫 이익배당을 얻어내기도 했다.
얼라인 외에도 차파트너스는 냉동식품 제조업체인 사조오양의 감사위원 선임에 이어 전장용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토비스의 자사주 소각, 전자부품 제조기업 상상인의 첫 분기배당을 끌어냈고 안다자산운용은 SK케미칼의 이익배당을 얻어냈다. VIP자산운용이 주주서한을 발송한 아세아시멘트는 주총 전 주주친화적 정책을 공시하는 식으로 행동주의 펀드 요구를 받아들였다.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는 과거 주총에선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기업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송옥렬 서울대 법학대학 교수는 “행동주의 전략은 결국 주총 대결에서 다른 주주의 지지를 전제로 한다. 다른 주주에 대한 설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라며 “향후 우리 자본시장에서 중요한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지난해 학술저널 '상사판례연구'에서 발표한 논문 ‘헤지펀드 행동주의에 대한 이론적 검토’에선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로 기관투자자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는 “행동주의 펀드가 캠페인을 하며 기관투자자에 의견을 밝힐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소극적이던 기관투자자 일부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소극적이던 국민연금이 막판 조건부 찬성을 낸 것도 행동주의 펀드가 국민연금에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요구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을 시작한 시간이 짧은 데다 부정적 시선이 많아 자본시장에 연착륙하려면 ‘평판’ 관리부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청한 전문가는 “행동주의 펀드가 비효율적으로 경영되는 기업에 개입해 수익을 증대시키는 방식을 이어간다면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어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만든 이상목 컨두잇 대표는 “소액주주와 충분히 소통해 주가 변동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캠페인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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