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위기의 엔씨소프트, '대수술'…'리니지 왕관' 벗는다

성상영 기자 2024-10-24 06:01:00
2년 만에 매출 반토막, 고강도 구조조정 다음달 주총 열고 4개 자회사 설립 의결 '본사 주도형'서 '독립형'으로 방향 선회 신규 IP 발굴 사활…'탈(脫)리니지' 가속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엔씨소프트 사옥 [사진=엔씨소프트]
[이코노믹데일리] 거듭된 실적 부진에 시달린 엔씨소프트가 본사 사업부문 4곳을 자회사로 독립시키기로 하며 다시 한 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이달 초 게임 품질보증 부문과 비(非)게임 소프트웨어 부문을 각각 엔씨큐에이와 엔씨아이디에스로 분사한 이후 한 달도 채 안 돼 자회사 4곳 분할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도 추진하면서 한층 강도 높은 대수술을 예고하고 나섰다.

23일 엔씨소프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다음달 2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자회사 분할 안건을 의결한다. 인공지능(AI) 기술 연구개발(R&D)을 전담하는 AI서비스연구사업부문과 함께 쓰론 앤 리버티(TL), LLL, 택탄(TACTAN) 등 게임을 개발·운영하는 3개 사업부문까지 총 4곳을 분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신설 자회사 4곳은 엔씨소프트가 지분 100%를 보유하며 내년 2월 1일 출범할 예정이다.

◆'리니지 왕국'의 날개 없는 추락

엔씨소프트가 1997년 창립 이후 최대 규모로 구조조정에 나선 배경은 단연 계속된 실적 악화다. 엔씨소프트 매출은 2022년 1분기 7903억원을 기록했다가 1년 만인 지난해 1분기에는 4788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올해 들어서는 분기 매출 4000억원대마저 무너지며 3000억원대 후반에 머물러 있다. 다음달 발표될 3분기 실적 역시 비슷한 수준이 전망된다.

'리니지 왕국' 엔씨소프트의 날개 없는 추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대형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원조 격인 리니지가 1990년대 말 대박을 터뜨린 이후 현재까지 20년 넘게 리니지 지식재산권(IP) 기반 게임에 의존했다. 2008년 '아이온', 2012년 '블레이드 앤 소울'을 각각 출시하며 대표 IP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은 리니지만 살아남았다.

문제는 리니지 시리즈는 이른바 '핵과금러'로 불리는 고액 결제 이용자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게임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신작을 흥행시키는 동시에 신규 이용자 유입을 통해 기존 게임의 생명을 연장해야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그러지 못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하는 TL이 리니지와의 차별화를 강조한 것도 '리니지 원툴'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2022~2024년 엔씨소프트 경영 실적 [자료=금융감독원/ 편집=성상영 기자]
◆핵심은 게임 개발 주도권 이전

이번 자회사 신설로 엔씨소프트가 추구하려는 목적도 '탈(脫)리니지'로 해석된다. 지금까지는 게임 개발 주도권을 본사가 갖고 있었다면 각 프로젝트별로 전문 스튜디오가 전적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구조로 바꿔 신규 IP 발굴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TL과 LLL·택탄의 IP 역시 내년 출범할 자회사 '스튜디오X·Y·Z(가칭)'가 각각 소유하게 된다.

경쟁 게임사와 비교하면 엔씨소프트의 이러한 결정은 오히려 한 발 늦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엔씨소프트와 더불어 게임 업계 '빅4'로 불리는 넥슨·넷마블·크래프톤은 별도로 설립된 스튜디오가 새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게임 개발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전문 스튜디오에 게임 개발을 맡기는 게 훨씬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전했다.

엔씨소프트 또한 지난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개발 전문 스튜디오 체제는 게임 개발 전문성, 조직의 창의성과 진취성,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택진·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TL의 글로벌 퍼블리싱(배급) 회사인 아마존게임즈에 보낸 서한에서 "개발 전문 스튜디오를 통해 완성도 높은 게임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의 대형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쓰론 앤 리버티(TL)' 게임 화면 [사진=엔씨소프트]
◆개발 직군까지 희망퇴직, 노조 반대는?

구조조정 필요성과는 별개로 노동조합을 어떻게 설득할지는 과제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1월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를 폐업하고 4월 비개발·지원 직군 대상 권고사직, 10월 엔씨큐에이·엔씨아이디에스 분사를 차례로 추진하면서 노조와 마찰을 빚어 왔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엔씨소프트지회(엔씨소프트 노조)는 지난달 본사에서 권고사직과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앞선 권고사직과 달리 개발 직군까지 포함한 희망퇴직이 예고되면서 노조의 반발도 커질 전망이다. 엔씨소프트는 구체적인 희망퇴직 규모를 밝히지 않았지만 자회사 전출 인원을 포함해 수백명이 회사를 떠날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상반기 말 엔씨소프트 직원 수는 4900여명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짧게 회사를 옮겨 다니는 개발 직군 특성상 노조가 제 힘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엔씨소프트·넥슨을 비롯한 국내 대형 게임사의 노조 가입률은 50%가 채 안 된다. 엔씨소프트 노조에는 직원 약 35%인 1700여명이 가입돼 있지만 최근 가입률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