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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백기사냐 흑기사냐 ③] '기업사냥꾼' '먹튀' 논란…사모펀드의 명과 암

임효진·김광미·박연수 기자 2024-10-04 17:24:45
중국 자본 품은 MBK '먹튀' 논란 20년 전 SK-소버린 사태 재부각 일부 지배구조 개선했다는 평가 JKL파트너스-티웨이항공 엑시트 투자업계에선 성공 사례로 꼽혀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발표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사모펀드의 별칭은 ‘기업 사냥꾼’이다. 기업을 성장시키기보다는 기업의 자산을 팔아 이익을 취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빗대 만들어졌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지난달 13일 고려아연 주식을 공개매수한다고 밝혔을 때도 고려아연이 곧바로 내놓은 의견 표명서에는 “최대주주인 영풍이 기업 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라고 비판하며 이 별칭을 썼다.

별칭과 함께 자주 쓰이는 말이 ‘먹튀’다. 이익을 챙긴 후 책임을 다하지 않고 도망간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이 말은 MBK가 고려아연을 중국에 매각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됐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오랜 기간 투자할 거고 먹튀 등의 논란이 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모펀드를 향한 이 같은 시선은 2000년대 초 외국계 사모펀드를 경험한 데서 나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 ‘삼성물산-헤르메스 사태’다.  2003년 11월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총 발행주식 5%를 매입했다. 언론을 통해 헤르메스는 삼성물산에 대한 지원 가능성을 꾸준히 강조하며 주가를 올렸지만 주가가 일정 수준 오르자 헤르메스는 주식 전량을 팔아 30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부정적 시선이 많음에도 사모펀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 평가는 긍정과 부정을 오간다.

약 20년 전 벌어진 일명 ‘SK-소버린 사태’는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지만, 사후 평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기업 가치와 지배구조 개선을 평가표에 넣으면 기업 사냥꾼이라고 할 수 없는 면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K-소버린 사태는 2003년 모나코 국적의 사모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당시 국내 최대 정유회사이자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 주식을 확보하며 SK그룹과 경영권 쟁탈권을 벌인 사건이다. 소버린은 SK(주) 주식 14%를 매입한 뒤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최태원 회장의 이사회 사퇴를 요구했다. 당시 SK그룹의 직접 보유 지분은 소버린보다 적은 13%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정기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의 재선임이 결정되면서 경영권 장악에 실패했으니 소버린의 완패였다. 결국 소버린은 2005년 6월 SK(주)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꾼 뒤 그해 7월 SK(주)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1만원 이하에 사서 4만9000원에 팔면서 8040억원의 차익을 남긴 걸 두고 외국 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을 휘젓더니 자그마치 1조원 가까이 되는 차익을 챙겨 떠났다며 ‘먹튀’ 논란이 거세졌다.

논란과 달리 해외 시선은 달랐다. 이 시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게재한 칼럼 ‘재벌에 대한 도전이 남긴 교훈’은 “소버린은 SK(주)에 대한 도전을 통해 누구도 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재벌 개혁을 추진했다”면서 “주주 권리 찾기 노력이 무산돼 지분 매각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옹호했다.

실제 소버린 사태가 해악만 끼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SK그룹이 이사회제도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사외이사 비율을 75%로 확대하고 투명경영위원회 등 하부 위원회를 설치했다. 소액 주주들이 소버린이 아닌 SK 경영진을 지지하도록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후 주주총회에서 투자자들이 경영진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평가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4일 “국내에서는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다. 사모펀드가 회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는데 경영권이라는 것은 경쟁을 통해서 가져오는 게 원칙적으로 맞고 그렇게 쟁취할 경우 회사의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미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된 계기도 사모펀드들이 시장에서 활동하면서 경영진들이 긴장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사모펀드의 양면성은 항공업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항공이 대표적이다.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지난 2021년 티웨이항공의 800억원 규모 전환우선주(CPS) 발행에 참여하며 지분의 25%를 보유하게 됐다. 티웨이항공이 장거리 노선 운항을 시작하며 외형 확대에 나서면서 외부에선 안전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의 영향이라는 비판이 잇따라 나왔다.

지난 6월 일명 ‘기체 바꿔치기 의혹’을 받을 때도 2대 주주로 있는 JKL파트너스로 이목이 쏠린 이유다. 기체 결함으로 일정이 지연되면서 당초 오사카 노선에 배정됐던 항공기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노선에 투입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유럽행 항공기가 보상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오사카행 항공기와 바꿔치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은 안전을 가장 중요시 하는 특수 사업인데 사모펀드는 안전보다 재무적 관점에서 항공사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티웨이항공에서 발생한 안전 문제와 서비스 논란은 사모펀드가 운영사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국내에서 사모펀드들이 LCC를 돈벌이 수단으로 투자하면서 대형 LCC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라고도 지적했다.

투자업계의 시선은 항공업계와는 또 달랐다. JKL파트너스는 지난 7월 대명소노그룹에 티웨이항공 지분을 모두 처분하며 투자금액의 2배 이상인 2000억원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티웨이항공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중단거리에서 장거리 노선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결과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국민연금의 사모투자 분야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 사모펀드 시장은 초기여서 사모펀드들이 무언가를 해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 같은 해외의 안 좋은 사례를 접하면서 그런 인상들을 갖게 된 것 같다”며 “비효율성을 개선해 기업 체질을 개선한 뒤 파는 케이스가 늘어난다면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