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티·메·인' 다 무너졌다…이커머스 성패 '한 끗 차이'로 갈릴까

김아령 기자 2024-08-22 06:00:00
‘티메프(티몬·위메프)’ 피해 판매자·소비자 연합이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티몬 사무실 앞에서 검은 우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김아령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티메프(티몬+위메프)’발 미정산 사태가 큐텐그룹을 넘어 이커머스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티메프가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한 지 약 3주만인 지난 16일 인터파크커머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데 이어 인테리어 오픈마켓 ‘알렛츠’도 대금 지연 사태에서 비롯된 경영난을 이유로 최근 폐업을 공지했다.
 
이커머스 시장 신뢰도 하락으로 자본잠식에 빠진 일부 플랫폼의 연쇄 붕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업계 특성상 시장을 선점할 때까지 공격적인 투자와 출혈 경쟁으로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는 경영 전략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업체 대부분 상장만 하면 단숨에 적자를 메울 수 있다며 몸집 불리기에 치중한 것이 부메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재무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출혈 경쟁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인터파크커머스는 지난 16일 서울회생법원에 자율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 형태의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로써 구영배 대표의 큐텐그룹 산하 이커머스 3사 모두 회생 절차를 위한 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큐텐은 지난달부터 불거진 티메프 미정산 사태로 파산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에 정상 운영을 주장했던 인터파크커머스 역시 기업회생의 길을 걷게 됐다. 큐텐 산하 플랫폼에 대한 신뢰도 추락으로 소비자와 판매자가 대거 이탈해 재정난에 빠지면서다.
 
인터파크커머스 측은 “일부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 등이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판매 대금을 보류하는 등 문제들이 발생해 판매자 대금 지급 지연으로 이어졌다”며 “최근에는 일부 채권자의 가압류 등 조치에 따라 정상적인 영업 활동과 소액이라도 계속하고 있는 미정산 대금 지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기업회생 배경을 밝혔다.
 
티메프 사태 후 우려됐던 이커머스들의 연쇄 도산도 현실화되고 있다. 인테리어 오픈마켓 알렛츠는 지난 16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부득이한 경영상 사정으로 8월 31일자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공지가 올라온 16일은 입점업체의 중간 정산일이었다.
 
갑작스런 폐업 선고 이후 다수 입점업체들은 알렛츠로부터 정산을 받지 못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주문한 제품이 돌연 배송 중단됐다며 카드 결제 취소 등을 촉구하고 있다. 19일 기준 알렛츠 피해 소비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엔 907여명,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모인 방엔 648여명이 가입해 피해 확인과 소송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앞서 디자인 소품·문구 전문 쇼핑몰 ‘바보사랑’도 티메프 사태 일주일 전 갑자기 폐업 소식을 알렸다. 바보사랑은 입점 업체에게 길게는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도 상황은 좋지 않다. 일부 기업의 경우 가진 자산을 모두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의 경우 5년간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57억원이던 자본총계는 2023년 –542억원으로 확대됐다. 누적된 당기순손실로 쌓인 결손금 규모도 상당하다. 에이블리의 미처리 결손금은 지난해 말 기준 204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매출 규모인 2594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결손금은 에이블리 설립 이후 누적된 적자에 따른 것이지만 현재 1500억원의 자본잉여금을 보유하고 있다”며 “판매자 정산금이 해당하는 미지급금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은 158%로 이는 자사가 판매자 정산금 대비 충분한 현금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명품 플랫폼 시장도 살얼음판이다. ‘머트발’로 불리는 머스트잇과 트렌비, 발란 3개 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각각 236억원, 654억원, 785억원의 결손금을 기록했다. 트렌비와 발란은 지난해 매출도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매출 감소율은 각각 54.5%, 56%에 달한다. 이 상황에서는 투자를 통한 자금 수혈 또는 흑자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지금까지 ‘계획된 적자’ 등의 표현을 써가며 실적 악화를 정당화해 왔다. 시장을 선점할 때까지 공격적인 투자와 출혈 경쟁으로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는 경영 전략이라는 논리다.
 
사용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업체의 특성 상 마케팅 비용을 쓰더라도 이용자나 거래액을 빠르게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쿠폰 남발 등 출혈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티몬과 위메프도 다른 업체와 비교해 유난히 할인 쿠폰을 많이 발급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같은 관행은 몸집 불리기에 효과는 있었지만 만성 적자 상태를 방관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었다.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 업계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선 과거 이커머스 산업 생태계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소비자나 판매자는 저렴한 가격이나 할인 프로모션으로만 승부하려는 이커머스를 믿지 않게 될 것”이라며 “출혈 경쟁이 아닌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생존하기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