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LCC의 승승장구는 비교적 최근 일이다. 성장기를 맞이한 2010년대 이전까지 위기의 연속이었다. 지난 3일 김포공항 근처의 한 카페로 제주항공 승무원 한 무리가 비행을 마치고 들어오는 가운데 양성진(61) 전 제주항공 전무가 “요즘은 LCC가 많이 컸지만 옛날에는 어마어마하게 힘들었다”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 국내 첫 LCC 제주항공 태동부터
양 전 제주항공 전무의 역사는 곧 LCC의 역사다. 그는 2004년 국내 최초 LCC인 제주항공의 설립 준비 과정부터 참여한 설립 멤버 중 하나다. 2006년 12월 1일 제주항공 홍보실장(이사)으로 시작해 2018년 12월 31일까지 제주항공 홍보본부장(전무)으로 재직했다. 국내 LCC의 태동기와 고난기, 이를 넘어선 성장기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양 전 제주항공 전무의 저서 ‘세상을 바꾼 K-LCC’의 첫 단원 이름은 ‘LCC의 기본 개념과 명칭 논란’이다. 2005년 제주항공 설립 때 LCC의 대표 격인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벤치마킹해 그대로 국내에 도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정서 차이로 소비자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아야 했다. 제주항공을 막아선 첫 장애물이었다.
제주항공은 유연성을 발휘해야만 했다. 모든 부가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 해외와 달리 K-LCC는 FSC와 유사하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한국의 LCC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한국형 LCC, 일명 ‘K-LCC’는 고난에서 탄생했다.
이와 관련 양 전 제주항공 전무는 “당시 소비자들에게 ‘비행기=기내식’이란 공식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서비스 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는데 그 시장에 LCC가 들어가서 서비스 없는 합리적 가격으로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 통하기 힘든 시장이었다”고 설명했다.
◆ ’저가항공사’가 ‘저비용항공사’ 되기까지
2006~2010년은 LCC의 고난기다. 양 전 제주항공 전무는 난제들에 봉착했다. 초창기 제주항공을 가리키는 LCC는 ‘저가항공사’란 의미로 사용됐다. 그는 “표준국어대사전도 저가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한다”며 “가격이 너무 저렴하면 위험할 것 같다며 사람들이 기피하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양 전 제주항공 전무의 첫 번째 임무는 LCC의 의미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때 그가 만든 단어가 ‘저비용항공사’다. 이는 LCC의 비즈니스 모델을 짚어주는 정확한 용어였다. 실제 LCC란 단일 기종 운영, 기내식·위탁수하물 등 부가 서비스 유료화 등을 통해 항공사 입장에서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승객들에게 저렴한 운임을 제공하는 항공사를 의미한다.
그는 “보도자료에 ‘저비용항공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꾸준히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며 “기사에 저가항공사라고 쓰면 기자에게 항의해서 바꾸라고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인식이 소비 패턴을 바꿨다. 저가가 합리성이 되자 저비용항공사 제주항공은 이후 늘 만석이었다고 양 전 제주항공 전무는 설명했다.
◆ LCC 업계를 떠난 후…후배들에 전하는 위로
양 전 제주항공 전무가 2022년 발간한 저서 ‘세상을 바꾼 K-LCC’는 국내 LCC에 관한 거의 유일한 총서로 통하며 승무원 지망생에게는 교과서처럼 읽힌다. 분량만 552쪽이다. 양 전 제주항공 전무는 “LCC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 LCC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책을 썼다”며 “책을 쓰는 데 10개월 걸렸다”고 설명했다.
양 전 제주항공 전무는 요즘 LCC들이 중장거리 노선을 확대하며 겪는 부침들이 LCC 초창기 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K-LCC의 역사를 기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항공사들이 전례 없는 위기를 겪는 동안 후배들에게 위로와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이 업계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마음이 아팠고 아프다”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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