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고목과 거목 사이…기로에 선 롯데케미칼

유환 수습기자 2024-02-23 16:48:16
한계 사업에 못 떨치면 고목, 미래 사업 성공하면 거목
롯데케미칼 전남 여수 공장 전경[사진=롯데케미칼]
[이코노믹데일리] 연간 20조원 가까이 벌어들이는 석유화학 업체 롯데케미칼이 기로에 서있다. 한계 사업으로 실적 악화 끝에 고목(枯木)이 되는 것과 미래 사업으로 양분을 빨아들여 거목(巨木)으로 거듭나는 사이에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스페셜티(고부가 소재)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사업인 기초소재의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한 상황에서 수익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롯데정밀화학과 협력해 전남 여수에 완공한 헤셀로스 공장은 이달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헤셀로스는 페인트나 생활용품,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첨가제로 롯데정밀화학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제품이다.

AI 기술로 스페셜티를 개발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이달 신설된 'AI 추진사무국'은 AI를 활용해 개발·생산·공급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소재 조합을 시뮬레이션하고 설비 유지·보수를 예측하며 스페셜티 경쟁력을 올리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이 제품부터 조직까지 대전환에 나선 이유는 실적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케미칼은 매출 19조9491억원, 영업손실 333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2022년) 대비 매출은 2조3270억원(10.4%) 줄고 영업손실은 4294억원 가량 축소됐다.

2022년 적자 전환한 이후 2년째 수천억원 규모 적자가 이어지며 위협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실적이 악화한 가운데 신사업에 대한 투자는 늘어나며 지난해 부채 비율은 전년 대비 11.2% 늘어난 66.3%를 기록했다. 신용 평가 업계에선 지난해 중순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중국발(發) 공급 과잉과 경기 부진으로 인한 수요 부족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간 국내에서 기초소재 물량을 수입하던 중국이 석화 자립에 나서며 핵심 사업과 시장을 잃은 게 크다고 평가 받는다.

이 때문에 롯데케미칼에선 '포트폴리오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계 사업은 정리하고 핵심·신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것이다. 지난해 이뤄진 중국 기초소재 사업 철수와 파키스탄 공장 매각 시도, 스페셜티 역량 강화는 이런 재편 과정의 일환으로 보인다.

차세대 먹거리에 대한 준비도 발맞춰 진행되고 있다. 전해액 용매와 같은 배터리 소재 사업과 수소 생산·유통·활용 사업, 울산 공장을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설로 전환하는 사업 등이 진행 중이다. 안정적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이 완료된다면 다시 한번 그룹의 캐시카우이자 거목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노력에도 사업이 순탄히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파키스탄 공장 매각은 최종 불발됐으며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설도 석화 불황으로 속도 조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계 사업이 발목을 잡으며 신사업 전환 속도는 줄어든 모양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신사업의 경우 당장 실적을 만들어 내는 것을 기대하기보단 조금씩 성과가 나오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며 "예를 들어 수소 사업의 경우 아직은 수익화까지 거리가 있지만 생태계가 열렸을 때 시작하면 늦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