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재벌집 3세' 정지선·김동선, 명암 갈린 '백화점' 경영능력

김아령 기자 2023-12-14 06:00:00
(왼쪽부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사진=각 사]

[이코노믹데일리] 국내 백화점업계 오너 자제들이 일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가운데 실적이 엇갈리며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현대가(家) 3세 정지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은 오픈 2년9개월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간 세운 금자탑으로 한국을 넘어 전 세계 눈높이에 맞는 쇼핑 메카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 부사장이 이끄는 한화갤러리아 백화점 사업부문은 부진을 겪고 있다. 국내 백화점 4사(롯데·신세계·현대·한화)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의 불명예를 안았다. 명품 소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데다 미래 먹거리 발굴마저 여의치 않자 김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모습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 내부 전경 [사진=현대백화점]
 
◆ 정지선의 야심작 ‘더현대 서울’, 1조 클럽 합류…비결은 ‘차별화’

정지선 회장이 이끄는 더현대 서울이 개점 후 33개월 만에 ‘1조 클럽’에 합류했다. 이는 종전 최고 기록인 신세계백화점 동대구점 기록을 2년2개월이나 앞당긴 것이다. 백화점 핵심인 이른바 3대 명품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매장 없이도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간 매출 1조원 돌파 기록을 쓰면서 서울 서남권 쇼핑 랜드마크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다.
 
13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더현대 서울의 누적 매출(1월1일~12월2일)은 1조41억원을 달성했다. 더현대 서울은 2021년 개장 첫해에 매출 6700억원을 올린 데 이어 작년에는 9509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연말 특수를 남겨둔 상황에서 1조원을 넘어섰다.
 
핵심 동력으로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있다. 더현대 서울의 외국인 매출은 2022년에는 전년보다 731.1% 증가했는데 올해 1~11월에는 891.7% 늘었다. 매년 외국인 매출이 7~8배 늘어난 셈이다. 현대백화점 전체의 외국인 매출 평균 신장률(305.2%)의 3배에 달한다. 외국인 구매고객 중 20~30대 비중은 72.8%다.
 
더현대 서울은 내·외국인 MZ(밀레니엄+Z)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BTS(3월), 르세라핌(5월), 아이브(6월), ITZY(8월), 블랙핑크(9월) 등 K-팝 스타 관련 팝업스토어를 꾸준히 유치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서울 여의도에 더현대 서울을 오픈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매장 구성과 공간 디자인에서 혁신을 꾀한 것이 대표적이다. 통상 백화점에는 층별로 판매되는 상품 카테고리가 명확한데 더현대 서울은 과감하게 틀을 깼다. 전체 영업 면적(8만9100㎡) 중 매장 면적(4만5527㎡)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나머지 절반가량의 공간(49%)을 실내 조경이나 고객 휴식 공간 등으로 꾸몄다.
 
차별화 점포를 선보인 더현대 서울은 국내 젊은 고객층에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에 올리기 좋은)한 장소로 인식됐다. ‘마뗑킴’ ‘시에’ 등 20~30세대가 열광하는 온라인 기반 패션 브랜드의 백화점 1호 매장을 잇달아 유치했다. 그 결과 경기 부진으로 인한 명품 매출 감소 추세 속에서도 더현대 서울의 패션 매출은 영 패션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불어났다. 올해 더현대 서울의 패션 매출은 개점 첫해보다 113.2% 급증했다.
 
이는 객단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1년 8만7854원이던 더현대 서울 객단가는 지난해 9만3400원, 올해 10만1904원으로 올랐다. 지난해 대비 올해 객단가 신장률은 현대백화점 전점 평균(+1.1%)를 훌쩍 상회하는 9.1%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더현대 서울 성공 요인에 대해 정 회장이 미래 투자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10년 넘게 그룹을 이끌면서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길’을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올해 1월 신년사를 통해 “남들이 가는 길을 따르기보다 우리만의 성장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업무와 사업전략을 추진하는데 있어 형식을 버리고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목적에 충실함’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고객과 고객사가 표출하는 다양한 의견 속 ‘요구 뒤에 숨어있는 욕구’를 읽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브랜드의 경쟁력 강화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건 모습이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더현대 서울 5층에 기념품 편집숍 ‘더현대 프레젠트’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더현대 브랜드를 적용해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제품들을 판매한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 ‘더현대 브랜딩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곳에서 파는 대표 상품으로는 5층 실내정원 ‘사운즈 포레스트’의 향기를 담은 디퓨저가 있다. 5성급 호텔이 각 호텔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시그니처향 디퓨저를 개발해 판매하는 것과 비슷한 전략을 채택했다. 이외에 더현대 서울의 상징색인 초록색과 빨간색을 활용해 디자인한 에코백, 식기 등도 판매한다.
 
외국인 방문객 증가에 한국에서만 사갈 수 있는 ‘K-콘텐츠’ 판매 공간도 매장 한쪽에 마련했다. 이곳에선 K-팝을 대표하는 인기 아이돌 굿즈 등을 선보인다.
 
더현대 연도별 매출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