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배터리·바이오 낳은 SK이노베이션 R&D, 그룹 '성장 공식' 됐다

성상영 기자 2023-09-19 06:00:00
3대 신사업 BBC 중 '2B' 만든 힘은 R&D 그룹 리더-전략조직-환경기술硏 '3박자' 기술 개발로 토대 만들고 몸집 키워 분사 SK이노, 두뇌·사업력 겸비한 중추로 우뚝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전경[사진=SK이노베이션]
[이코노믹데일리]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에 그룹 미래가 있다고 봤다. 이들 세 사업이 갖는 공통점은 비교적 오랜 기간 해온 일들과 결이 다르다는 점이다.

SK가 재계 2위로 빠르게 몸집을 키운 원동력은 인수합병(M&A)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일부에서는 이미 다 갖춰진 사업, 될 만한 사업 위주로 계열사 편입을 지속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고 저평가하기도 한다. 극단적이게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정권과 혼맥으로 이어지며 손쉽게 알짜 계열사를 거느린 게 아니냐는 눈총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재계에서는 SK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둘 시기가 한참 지났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40년간 그룹을 키운 핵심 사업인 정유·석유화학은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로 시작됐는데 SK가 유공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선 때는 1980년 10월이다. 이른바 '정권 수혜론'의 정점에 있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는 문민정부인 1994년 공개 입찰을 통해 이뤄졌다.

SK그룹이 직물에서 석유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기 사업 체질을 바꾼 또 다른 힘은 연구개발(R&D)이다. 고(故)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인수 직후 한 일은 R&D 조직 설립이다. 올해 출범 40주년을 맞은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은 그룹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컨트롤타워 조직과 연계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왔다.

최종현 선대 회장은 유공 인수 직후 울산 정유공장을 찾아 R&D 조직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뒤이어 1982년 12월 유공 부·과장급 직원과 한 간담회에서 회사의 성격을 정유에서 종합에너지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 뒤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 전신인 유공 기술지원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환경과학기술원은 SK그룹 3대 신사업인 BBC 가운데 배터리(Battery)와 바이오(Bio)를 아울러 '2B'를 탄생시킨 모체다. 선대 회장이 이들 두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때는 1983년으로 1970년대 '석유에서 섬유까지 완전 수직계열화'를 비전으로 제시한 지 10년 만이다. 이는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로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춰 '그린 포트폴리오'로 다듬어졌다.

SK그룹은 꾸준한 R&D와 투자를 거쳐 SK온·넥실리스·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로 이뤄진 배터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SK바이오팜을 앞세워 다양한 신약을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SK이노베이션은 1991년 12월 당시 울산 석유연구실에서 3륜 전기차 제작에 성공하며 전기차 배터리 사업으로 첫 발을 뗐다. 이듬해 전기차 배터리 개발 주관 기관으로 선정돼 나트륨·유황을 소재로 사용한 배터리 연구에 착수했다. 1998년 8월에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전지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기술까지 확보한 SK이노베이션은 SKIET와 SK온을 분사시켰다. SKIET는 2021년부터 국내 증시에 분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株) 열풍에 힘입어 기업공개(IPO)까지 이뤄냈다. SK온은 2021년 4분기(10~12월) 분사했을 당시 매출이 1조665억원이었지만 올해 2분기(4~6월)에는 3조6961억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바이오 사업 역시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이 40년 업적으로 내세우는 분야다. SK바이오팜은 1993년 유공 기술지원연구소 소속 연구원 6명이 수행한 'P-프로젝트'가 시초다. 석유회사인 유공이 독일·영국·미국 등 서구 선진국의 전유물인 신약 개발에 나선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1996년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청(FDA)로부터 임상 허가를 받고 1998년 미 국립보건원(NIH)과 간질 치료제를 개발하는 등 빠르게 성과를 보였다.

SK바이오팜은 2011년 SK㈜에서 분사해 2020년 IPO까지 완료했다. 이 기간 수면장애 신약 솔리암페톨과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 등을 잇따라 개발하며 바이오 사업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배터리 계열사와 더불어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과 SK 미래 전략 그룹(경영기획실→SK수펙스추구협의회)이 합작한 결과물이다.

SK그룹은 총수가 구상을 하면 전략·기획 조직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R&D를 맡은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이 기술적 토대를 닦는 '3박자'를 맞춰 왔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와 이지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SK이노베이션이 환경과학기술원 출범 40주년을 맞아 진행된 R&D 경영 성과 연구에서 이 점을 SK 성장 비결로 꼽았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 부문 계열사를 거느리며 그룹에서 R&D 역량과 사업력을 겸비한 중간지주사로 존재감을 한층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여전히 R&D를 발판으로 다음 스텝을 준비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유상증자로 1조1400억원을 조달해 이 가운데 70%가 넘는 8277억원을 R&D에 쓰겠다고 밝혔다. SK온 대전 배터리연구원은 2025년까지 증축을 마치고 2027년에는 경기 부천시에 배터리·친환경 사업 특화 연구단지가 조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