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장은주의 여車저車] 기술로 승부하는 '혼다'...이륜차 대명사로 거듭나

장은주 기자 2023-09-02 07:00:00
혼다의 기술, 창업주의 장인정신에서 비롯돼 자전거에 엔진을 붙여 시작된 혼다 오토바이 대규모 리콜 사태로 '진통'...돌파구 마련 시급
혼다 전기차 '혼다 e'[사진=혼다코리아]
[이코노믹데일리]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 '혼다'는 창업주의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브랜드 고유의 기술력을 뽐낸다. 혼다는 1946년부터 꾸준히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최신 첨단 기술을 받아들여 자동차와 이륜차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혼다는 창업주의 도전과 장인 정신을 다시 새겨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모빌리티 시장에서 존재감을 다시 보여줄 전망이다.

◆기술 장인 '혼다 소이치로'...경영 장인으로 거듭나

혼다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여섯살 무렵, 마을 어귀에서 포드의 '모델 T'를 본 뒤 자동차에 흥미를 붙였다. 공학도이자 기술자의 꿈을 키워오던 혼다는 1921년 15세 나이로 무작정 도쿄로 상경해 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혼다는 6년간 자동차 엔진을 수리하고 전문성을 쌓던 중 정비소 사장으로부터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정비소를 차릴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1928년 고향으로 돌아와 정비소를 운영하며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 탈 것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온 혼다는 귀향 10년 뒤인 1937년 '도카이세이키'라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세웠다. 모터 피스톤 등을 생산했다. 이에 이미 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던 도요타에 부품 납품 등을 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미카와 지진 등 악재가 거듭 발생하며 공장 등이 손실됐고 남은 자산과 기술 등을 도요타에 매각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돼 당시 매각해 확보한 45만엔으로 1946년 혼다 기술연구공업을 재창업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12명의 직원과 함께 힘을 합쳐 전쟁에서 쓰였던 군대의 무선기용 소형 엔진을 대량으로 매입해 자전거에 부착했다. 이는 오토바이 개발의 시작이 됐다. 평소 탈 것에 대한 관심이 컸던 그는 자전거에 엔진을 붙인 간단한 오토바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흥행에 성공한다.

1950년대 들어 본격적인 전성기를 지낸 혼다는 1964년, 주변의 만류에도 첨단 자동차 기술의 경진 무대라 할 수 있는 경주 대회 포뮬러원(F1)에 도전했다. 이듬해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기술의 혼다'라는 별명이 붙고 세계 자동차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혼다는 "도전해서 실패하는 것에 겁먹지 말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무서워하라"고 소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브랜드 최초의 스포츠카 'S500'이 1986년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도요타의 렉서스 등 고급차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했다. 1990년에는 일본 최초 미드십 엔진이 장착된 'NSX'를 선보였지만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를 누리진 못했다. 

혼다는 일본 완성차 기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창업주의 기술 정신을 계승해 '시빅', '어코드', 'CR-V', '오딧세이' 등 모든 면에서 높은 품질과 기술을 자랑하는 모델을 선보였다. 

최근 온라인 플랫폼 전략 등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대규모 리콜 사태와 판매량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북미 시장서 발생한 120만대 규모의 리콜 사건은 후방 카메라 영상 오류 즉 기술 관련 문제인 만큼 '기술의 혼다'라는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커지는 위기 속에서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의 경영철학을 참고해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