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필요하지 않거나 존재 이유가 마땅히 없는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규제입증책임제'가 민원 처리 수준에 그치면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정부가 규제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민간이 심의해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영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25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주최한 '규제혁신포럼'에서 이같은 취지로 주장했다. 강 교수는 "현장을 모르고 만든 책상머리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식 접근이 중요하다"며 규제 개선 방식 변화를 강조했다.
강 교수는 국내 규제의 세 가지 문제점으로 △현장을 잘 모르는 규제 담당 공무원 △강력한 조정자 없이 미세조정에 그치는 규제 개선 △진짜 중요한 규제는 중장기 검토로 퉁치는 관행을 꼽았다. 그러면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원칙과 대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제입증책임제는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개인 또는 기업 등이 정부에 해당 규제 필요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면 정부가 이를 책임지고 증명하는 제도다. 만약 정부가 규제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면 규제를 없애야 한다. 현실과 맞지 않거나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규제를 찾아 개선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규제입증책임제는 민원 행정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민원인이 요청하면 소관 부서나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규제 필요성을 검토해 규제개혁위원회(또는 규제입증위원회)를 거쳐 처리 결과를 알려주는 정도로 그친다는 것이다.
규제 개선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한국은 주요 선진국 중 규제가 심한 국가 상위권에 줄곧 이름을 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시장규제지수(PMR)를 보면 한국은 1998년 첫 조사 이후 20년 넘게 '톱(Top)9'에 속했다. 최근인 2018년 조사에서는 규제가 강한 국가 6위를 기록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 혁신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검토 단계에서 진척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신속히 처리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장은 "규제 취지와 필요성이 있더라도 그 수단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면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면서 "신산업이 등장하고 업종 경계가 허물어지는데도 낡고 과도한 규제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시작부터 좌초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선 강 교수는 규제 존치 필요성은 정부가 입증하되 개선 방안은 민간이 마련하는 민간심의형 규제입증책임제를 제안했다. 대한상의는 협회·단체별로 킬러 규제 개선 과제를 모아 공동명의로 건의서를 작성해 정부에 건의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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